유상선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겸임교수
지난 몇 년간 우리 사회는 디지털 범죄 대응을 위해 휴대전화 감청 제도 도입을 두고 뜨거운 공방을 벌였었다. 필자 역시 음지에서 진화하는 범죄를 포착하기 위해 통신 감청의 필요성을 꾸준히 제기했던 사람 중 하나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우리 사법 체계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며 깊은 울림을 느꼈다. 감청이 담장 밖 범죄자의 숨소리를 엿듣는 ‘망원경’이라면, 위장수사는 범죄 모의 밀실의 문을 열고 직접 들어가는 ‘열쇠’이다. 이제 디지털 범죄 수사의 패러다임이 이동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지난 2021년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를 시작으로, 2025년 성인 대상 성범죄, 그리고 올해 2026년 마약 범죄에 이르기까지 위장수사의 범위를 단계적으로 확대해 왔다. 이는 단순한 수사 기법의 추가가 아니라, 법원의 엄격한 통제 속에서 범죄에 접근하는 가장 사실적이고 실효적인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제도 도입 후 약 4년간 총 765건의 위장수사를 통해 2171명의 범죄자를 검거한 것으로 나타났다. 위장수사는 통신비밀보호법 아래 감청이 극도로 제한된 현실에서 디지털 범죄를 뿌리 뽑는 핵심 보루로 자리 잡은 것이다.
그러나 현장 수사관의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의 위장수사는 수사관 개인의 정신력과 영혼을 갈아 넣는 구조다. 장기간 가짜 신분을 연기하며 범죄자들과 심리전을 벌이는 과정에서 수사관들이 겪는 트라우마와 정신적 고통이 심각하다. 설상가상으로 범죄 세력들은 이미 인공지능(AI)을 활용해 범죄망을 자동화·지능화하고 있다. 한 사람의 수사관이 AI로 무장한 범죄의 폭풍을 정면으로 맞서기엔 역부족 상황이다.
당국이 눈여겨보아야 대목이 있다. 이미 선진국 사법 당국은 디지털 범죄 대응을 위해 데이터와 기술이 결합한 수사체계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미국 국토안보부가 대통령 행정명령에 따라 공포한 인공지능 활용 사례 인벤토리에 따르면, 다크웹의 마약 밀매망을 추적하고 아동 성착취 범죄 징후를 식별하는 등의 영역에 AI 자동 분석 기술을 도입해 수사 효율성을 높이고 있다. 위장수사의 패러다임이 ‘인력 중심’에서 ‘데이터와 기술 결합형’으로 진화하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글로벌 대세다.
다만, 강력한 기술은 항상 양날의 검이다. AI 위장수사가 무작위로 확산하거나 과도하게 개입할 경우, 범죄를 예방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범죄를 유도(함정수사)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으며, 이는 바로 국민의 기본권 침해라는 헌법적 가치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다. 과거 감청 운영 과정에서 겪었던 오남용의 잘못을 되풀이해서는 결코 안 된다.
이에 다음과 같은 단계적 정책 추진을 권고한다. 첫째, ‘선 통제 기준, 후 기술 도입’의 원칙이다. 기술을 먼저 도입하고 문제가 터진 뒤에 규제책을 만드는 구태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AI 위장수사의 허용 범위, 금지 행위, 그리고 AI 활동을 실시간으로 기록하고 감독할 수 있는 사법적 통제 시스템을 먼저 설계해야 한다.
둘째, 범 학제적 공론화 기구를 즉시 구성해야 한다. 학계, 법조계, 기술 전문가, 그리고 시민사회가 함께 참여하여 수사의 효율성과 기본권 보호의 균형점을 찾는 사회적 합의 및 법제화 과정을 선행해야 한다.
셋째, 엄격한 거버넌스 구조 하에 연구한 기술을 단계적으로 실증해야 한다. 완성된 통제 기준을 바탕으로, AI 에이전트를 활용한 수사기법을 제한된 영역에서 먼저 시험 적용하며 제도의 안정성을 충분히 검증하는 것이 필요하다.
거대해진 디지털 범죄를 압도하기 위해 AI 위장수사로의 도약은 피할 수 없는 과제다. 그러나 국가 권력이 법의 이름으로 기술을 손에 쥐기 전, 반드시 명심해야 할 본질이 있다. 정교하게 다듬어지지 않은 기술은 사회를 위협하는 맹수 같지만, 투명한 창살 안에 통제된 기술은 시민을 지키는 든든한 파수꾼이 된다는 점이다. 위장수사의 미래는 화려한 기술 고도화가 아니라, 국민이 안심하는 신뢰의 통제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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