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 벗은 워시 체제… 선제안내 작별하고 성명서 짧고 강해져

점도표의 배신… 연내 인하 전망 뒤집고 ‘추가 인상’ 강력 시사

트럼프의 고금리 저격에도 마이웨이… 물가 안정 최우선 선언

“구식 데이터 버린다” 5개 영역 TF 구성… 시스템 대수술 예고

케빈 워시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17일(현지시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케빈 워시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17일(현지시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케빈 워시 연준 신임 의장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제롬 파월 전 의장 시대와 완전히 작별했다. 그 자리에는 케빈 워시(사진) 신임 의장이 이끄는 새로운 연준이 마침내 베일을 벗었다. 취임 후 첫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를 주재한 워시 의장은 금융시장의 예상을 뛰어넘는 강력한 ‘매파(통화긴축 선호) 본색’을 드러내며 파격적인 연준 개혁의 서막을 알렸다.

17일(현지시간) 열린 FOMC 회의에서 연준은 기준금리를 현 3.50∼3.75%로 동결하기로 만장일치 결정했다. 이란 전쟁에 따른 국제 유가 급등과 경제 불확실성을 감안할 때 동결 자체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였던 터다. 그러나 회의 직후 발표된 정책결정문과 경제전망보고서(SEP), 그리고 워시 의장의 첫 기자회견은 전 세계에 큰 충격파를 던졌다.

워시 체제는 일단 그간 연준이 금리 인하 기조를 이어가겠다는 근거로 해석되어 온 ‘완화 편향(easing bias)’ 문구를 정책결정문에서 전면 삭제했다. “추가 조정의 정도와 시기를 고려한다”는 식의 이른바 ‘선제안내(포워드 가이던스)’와 결별을 선언한 것이다.

이러한 정책 시그널의 폐기는 워시 의장이 평소 지녀온 소신과 궤를 같이한다. 그는 상원 인준 청문회에서도 연준의 선제안내가 스스로의 손발을 묶는 ‘정책 오류’를 낳을 수 있다고 강력히 비판했다. 2021년 인플레이션이 폭발했을 당시 연준이 사전에 제시한 경로에 얽매여 상황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했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워시 의장은 성명서 분량을 기존의 절반 이하로 대폭 줄여 단순화했고, 사실만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방식을 택했다. 전임 체제에서 위원들 간 이견이 노출되었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잡음 없이 만장일치 합의를 이끌어내며 연준 장악력을 입증했다.

결정문에서 향후 행보에 대한 단서가 사라진 대신, 점도표는 한층 뚜렷한 신호를 보냈다. 지난 3월 점도표에서 연준 위원들은 연내 1회 금리 인하를 점쳤으나, 이번에는 연내 1회 인상(중간값 3.8%)으로 전망을 완전히 뒤집었다. 투표권을 행사한 위원 18명 중 9명이 연내 최소 한 차례 이상의 금리 인상을 예상하며 정확히 절반이 인상파로 돌아섰다.

지난 3월 조사 당시 금리 인상을 예상한 위원이 단 한 명도 없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당한 격변이다. 워시 의장은 본인이 이번 점도표에 금리 전망 의견을 제출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오히려 점도표를 ‘지우개 달린 연필’에 비유해 강한 확신이 없는 불확실한 도구라며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워시 의장의 이러한 매파적 선회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관계에서도 상당한 파장을 낳을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금리 인하를 강력히 주장했다. 새 연준 의장을 임명할 때도 고금리를 꺾고 통화 완화를 단행할 인물을 찾는다고 공공연하게 밝혔다. 그 적임자로 워시 의장을 발탁했다.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기대감이 배신으로 돌아왔다. 워시 의장은 첫 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바람과는 달리 금리 인하 의사를 전혀 시사하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의 우선 목표는 의회가 부여한 임무인 물가 안정을 달성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대 고용이라는 또 다른 책무 대신 인플레이션 억제를 최우선 과제로 내걸었다. 트럼프 대통령과의 대화 여부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며 즉답을 피했다. 월가에서는 워시 의장이 트럼프 행정부로부터 독립적인 행보를 취할 것임을 명확히 보여줬다며, 그가 결국 트럼프 대통령을 “실망시킬 운명”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나아가 워시 의장은 연준의 시스템 전반을 뜯어고치는 구조 개혁을 예고했다. 그는 연준의 소통 방식, 대차대조표, 데이터 출처, 생산성 및 고용, 인플레이션 프레임워크 등 5개 핵심 영역을 재검토할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한다고 발표했다. 특히 현재 연준이 활용하는 데이터 대부분이 구식 조사 방법에 의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신 인공지능(AI) 기술과 민간의 실시간 정보를 적극 도입해 ‘지금 당장’ 일어나는 경제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메시지가 없을 때는 FOMC 후 기자회견을 열지 않을 수도 있음을 시사하는 등 효율성 중심의 개편도 시사했다.

월가 전문가들은 “시장이 기대하던 완화적 통화정책은 더 이상 없다”며 연준이 본격적인 금리 인상 준비에 착수했다고 진단했다. 미국과 이란 간 전쟁으로 촉발된 고유가 여파로 미국의 5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4.2%까지 치솟은 상황에서, 워시 의장이 이끄는 신임 연준은 과거의 포워드 가이던스 관행을 과감히 깨부수고 인플레이션과의 정면 승부를 선택했다.

워시 의장의 데뷔전은 강렬했다.

권순욱 기자 kwonsw87@dt.co.kr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권순욱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