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골 정류장에 앉아 있겠다
박상천 지음 / 시와함께 넓은마루 펴냄
우리는 늘 어딘가를 향해 달린다. 더 빨리 도착해야 하고, 더 많은 것을 이뤄야 하며, 남보다 뒤처지지 않아야 한다는 압박 속에 살아간다. 그러나 어느 순간 문득 묻게 된다. 그렇게 달려 도착한 곳에 과연 내가 있었는가. 박상천 시인의 새 시집은 바로 그 물음 앞에 가만히 멈춰 선다.
표제시가 보여주는 시골 정류장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다. 정해진 목적지를 향해 달리는 버스에 몸을 싣는 대신, 지나가는 마을 사람의 장화 색깔에 눈길을 주고, 아이스크림 하나를 사 먹으며 시간을 천천히 음미하는 자리다. 효율과 속도가 미덕이 된 시대에 시인은 오히려 버스 한 대쯤은 그냥 보내버리는 ‘망설임’을 택한다. 그 망설임은 우유부단함이 아니라, 하루를 함부로 흘려보내지 않으려는 철학적 숨 고르기다.
박상천의 시는 어렵지 않다. 쉬운 말, 낯익은 풍경 , 소박한 사물 속에서 존재의 깊은 결을 길어 올린다. 햇볕을 쬐게 해주려고 연구실 밖에 내어놓았다가 얼어버린 화분 앞에서 느끼는 죄스러움, 새벽녘 푸른 잉크처럼 번지는 사유 등 시인의 시선이 닿으면 소소한 일상도 한 편의 시가 된다. 무심히 지나쳤던 나날은 낯설고도 아름다운 얼굴을 드러내고, 독자는 그제야 흔한 하루 속에도 시가 숨어 있음을 깨닫게 된다.
모두가 다음 정류장을 향해 서둘러 떠날 때, 시인은 홀로 정류장 의자에 남아 있는다. 그리고 인생은 어쩌면 더 멀리 가는 일이 아니라, 잠시 앉아 어디쯤 와 있는지 돌아보는 일이라고 말한다. 바쁘게 살아오느라 정작 자신을 놓쳐버린 이들에게 잠시 쉬어가도 괜찮다고 권한다. 시집은 그런 고요한 멈춤이 건네는 위로다. 정류장을 스쳐 가는 바람처럼, 시인의 언어는 오래도록 마음 한편에 잔잔한 울림을 남긴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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