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전 기대에 국제유가 3개월 만에 최저 수준

나프타 가격 두 달여 만에 49.5% 급락… 포장재 부담 완화

식품업계 "이미 손실 큰 상황… 당장 제품 가격 인하는 어려워"

한국은행 "소비자물가 상당 기간 높은 오름세 지속" 전망

서울 시내의 한 주유소에서 17일 한 고객이 결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시내의 한 주유소에서 17일 한 고객이 결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제 유가도 떨어졌다는데 내 장바구니 물가는 언제쯤 내려갈까.

미국과 이란 간 종전 협상 타결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면서 국제유가와 원자재 가격이 안정세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환율 문제와 원자재 계약 시차 등의 요인으로 식품·유통업계가 가격 하락에 따른 이익 개선 효과를 단기간에 누리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장바구니 물가 하락엔 생각보다 더 긴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17일 ICE선물거래소에 따르면 급락세를 이어가던 국제유가는 16일(현지시간) 3개월여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이날 ICE선물거래소에서 8월 인도분 브렌트유 선물 종가는 배럴당 78.96달러로 전 거래일보다 5.1% 하락했다. 뉴욕상업거래소에서 7월 인도분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 종가는 배럴당 76.05달러로 전 거래일보다 5.8% 급락했다.

일단 유가 하락은 식품업계에 긍정적인 신호다. 식품업체는 원재료를 수입하고 공장에서 제품을 만든 뒤 전국 유통망을 통해 배송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따라서 유가가 안정되면 해상운임과 내륙 운송비, 냉장·냉동 물류비 등 배송 전반의 비용 부담이 줄어들 여지가 생긴다.

식품업계가 주목하는 대표 품목은 나프타다. 나프타는 라면·과자·음료·가정간편식 포장에 쓰이는 비닐, 필름, 페트 등의 기초 원료다. 원유에서 추출되는 석유화학 원료인 만큼 국제유가와 중동 정세에 민감하게 움직인다. 전쟁 이후 나프타 재고 부족으로 포장재 가격이 급격히 뛰면서 식품업체의 제조원가 부담이 커졌다.

종전 기류가 짙어지자 나프타 가격도 크게 떨어졌다. 올해 4월 초 배럴당 141.26달러였던 나프타 가격은 지난 15일 71.36달러까지 내려갔다. 두 달여 만에 49.5% 급락한 것으로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 완화와 국제유가 안정 흐름이 맞물린 결과다.

하지만 원자재 가격 하락이 소비자 제품 가격 인하로 당장 이어지기는 어려워 보인다. 대부분 식품업체들이 전쟁 발발 후에도 제품 가격을 인상하지 못하고 원가 부담을 그대로 떠안고 있어, 원자재 가격 하락은 추가 가격 인상 압력을 완화하는 데 그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농심 관계자는 "중동 전쟁 발발 직전에 안성탕면을 포함한 16종 제품 가격을 인하했는데 전쟁 이후 원유 가격이 폭등해 오히려 손실이 커진 상황"이라면서 "제품 가격에 영향을 주는 원재료, 환율, 물류비용, 창고비용, 인건비 등이 종합적으로 크게 올랐다"고 말했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종전이 이뤄진다 하더라도 국제 정세가 즉각적으로 제품 가격에 반영되기는 어렵다"며 "물류를 비롯한 전반적인 상황이 정상을 되찾는데 시간이 꽤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종전 이후 소비자 제품 가격이 인하될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보고 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업들이 유가 하락으로 원가 부담을 덜었다고 하더라도 그동안 전쟁으로 손실 봤던 부분을 메워야 하기 때문에 제품 가격을 인하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면서 "매주 가격을 조정하는 원유와 달리 원유를 활용해서 만든 소비자 제품은 한 번 가격이 오르면 다시 내리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한국은행의 물가 전망도 이 같은 관측에 힘을 보탠다.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는 이날 오후 한은에서 열린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기자설명회에서 "소비자물가는 앞으로 상당 기간 높은 수준의 오름세를 지속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에너지 공급망이 중동 전쟁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고 국제유가가 안정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고 밝혔다.

나경연 기자 contest@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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