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충격 6개월 뒤 번져 1년 지속
수요 압력도 5월 통방 때보다 강해
내년에도 소비자·근원물가 2% 웃돌 듯
중동 전쟁 종전 합의로 국제유가가 내려갔지만 물가 오름세는 쉽게 꺾이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유가와 환율 상승이 이미 석유류 가격을 크게 밀어 올린 데다 이 과정에서 쌓인 비용 부담이 앞으로 공업제품과 서비스 가격으로 번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여기에 경기 개선과 임금 상승에 따른 수요 압력까지 예상보다 강해지면서 고물가 장기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신현송 한은 총재는 17일 '2026년 상반기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기자간담회에서 "임금과 수요 쪽이 5월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통방) 때보다 강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며 "그동안 비용 쪽을 강조했는데 이번에는 수요 쪽도 물가를 끌어올리는 힘이 더 강하지 않은가 보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물가 상승은 석유류 가격 급등이 주도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올해 1월과 2월 각각 2.0%에 머물렀지만 중동 전쟁 이후 국제유가와 원·달러 환율이 함께 오르면서 3월 2.2%, 4월 2.6%, 5월 3.1%로 높아졌다. 월간 소비자물가가 3%를 넘어선 것은 2024년 3월 이후 처음이다.
특히 5월 석유류 가격은 전년 동월보다 24.2% 급등했다. 국제유가 상승이 휘발유와 경유 가격에 반영된 데다 원화 약세로 달러로 결제하는 원유의 수입 부담까지 커진 영향이다. 항공료와 단체여행비 등 유가와 연계된 서비스 가격도 함께 오르면서 식료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물가 상승률은 2.5%까지 높아졌다.
문제는 국제유가가 내려가더라도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한동안 남는다는 점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당시에는 석유류 가격이 먼저 오른 뒤 약 6개월 후부터 생산비와 운송비 상승이 공업제품과 서비스 가격에 반영됐다. 이 같은 간접효과는 유가가 안정된 뒤에도 약 1년간 이어졌다.
김영주 한은 조사국 물가고용부장은 "전쟁 직후에는 직접효과의 기여도가 컸지만 하반기 이후 국제유가가 안정되면서 직접효과는 축소되고 간접효과는 오히려 확대됐다"며 "당시 간접효과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의 약 20% 수준에 달했다"고 말했다.
이번에도 국제유가가 전쟁 이전 수준으로 빠르게 돌아가기는 어렵다는 게 한은의 판단이다. 종전 합의로 유가가 단기 하락했지만 생산시설 복구와 원유 수송 정상화에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신 총재는 "에너지 공급망이 정상화되고 국제유가가 안정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며 단기적인 유가 등락에 큰 의미를 부여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반도체 등 IT 제조업 대기업의 성과급 확대도 물가를 자극할 변수로 꼽혔다. 올해 1분기 IT부문 특별급여는 대기업을 중심으로 60% 이상 증가했다. 높은 성과급이 다른 업종의 임금 협상 기준으로 작용해 정액급여와 소비를 끌어올리면 비용과 수요 양쪽에서 물가 압력이 커질 수 있다.
김 부장은 "향후 물가 흐름의 핵심은 특별급여 자체가 아니라 임금 상승이 정액급여 인상으로 이어지면서 경제 전반으로 얼마나 확산되는지 여부"라며 "확산이 본격화하면 수요 측과 비용 측 압력이 동시에 확대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은은 올해 하반기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 내외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근원물가도 2% 중후반의 상승률을 이어갈 것으로 봤다. 내년에는 유가에 따른 비용 압력이 점차 낮아지더라도 소비 회복과 임금 상승이 물가를 떠받치면서 소비자물가와 근원물가 모두 목표 수준인 2%를 웃돌 것으로 예상했다.
신 총재는 "물가 압력이 기업의 가격 결정과 기대인플레이션에 영향을 미쳐 악순환이 생기면 통화정책이 너무 늦었다고 할 수 있는 때가 올 수 있다"며 "물가가 목표 수준으로 안정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 때까지 적극 대응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유진아 기자 gnyu4@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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