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 문화평론가

알고 보니 멕시코가 우리 형제의 나라였다고 한다. 한국을 ‘형제의 나라’라고 부르는 멕시코 국민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럴 정도로 한국에 우호적이라는 얘기다. 물론 농담 섞어 하는 말이긴 하지만 한국에 대한 호감이 없었다면 농담으로라도 이런 표현을 하진 않았을 것이다.

형제라는 표현이 등장한 건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때였다. 당시 멕시코는 조 3위로 탈락 위기에 놓였었는데 한국 덕분에 기적적인 16강 진출을 이뤄냈다. 한국이 우승 후보인 독일을 2 대 0으로 잡아냈기 때문이다. 후반 추가시간에 손흥민이 50m 폭풍 질주로 쐬기골을 넣었을 때 멕시코에선 범국민적 축제 열기가 터졌다. 그때 ‘한국은 우리의 형제이고 당신들은 벌써 멕시코 사람입니다’라는 노래를 멕시코인들이 한국 대사관 앞에서 불렀다고 한다. 그런 속에서 멕시코인들 사이에 한국에 대한 엄청난 호감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이번 월드컵 한국과 체코의 경기 때 멕시코인들이 경기장에 가득 들어차 한국을 응원하는 모습에 많은 이들이 깜짝 놀랐다. 경기장 분위기가 거의 한국 홈구장 수준이었다고 한다. 우리 매체들이 “현지에서 한국 광풍이 불고 있다”라고까지 전할 정도였다. 어떤 현지인은 “한국과 멕시코가 비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심지어 한국이 멕시코를 이기길 바란다는 멕시코인까지 멕시코 방송국 프로그램 시민 인터뷰에 등장하기도 했다.

이런 한국 열기에는 앞에서 언급한 러시아 월드컵의 기억에 더해 우리 대표팀의 캠프도 영향을 미쳤다. 유명한 축구 강국들이 주로 미국에 캠프를 차렸다고 한다. 그때 손흥민 같은 세계적 스타를 보유한 한국대표팀이 멕시코에 캠프를 차린 것이 현지에서 화제가 됐다. ‘한국 대표팀이 캠프 시설에 만족을 표했다’ 같은 내용이 현지 방송국에서 뉴스로 소개됐을 정도다. 우리와 첫 경기에서 맞붙은 체코는 미국에 캠프를 차린 팀이었다. 이러니 더욱 한국을 응원하게 된 것이다.

한류도 한국의 인기에 큰 영향을 미쳤다. 현재 중남미 지역의 한류 열기는 상당히 뜨겁다. 예를 들어 대선전이 펼쳐지고 있는 콜롬비아의 현지 매체는 이달 초 집권 좌파연합 ‘역사적 협약’의 이반 세페다 카스트로 후보가 K문화를 활용한 선거 홍보 전략을 펼치고 있다고 보도했다. 야권의 공세에 맞서 한국 음악, 한국 드라마의 코드를 활용한다는 것이다. 후보가 케이팝 노래를 배경으로 등장해 한국식 손동작인 ‘손가락 하트’를 하는 식이다. 이렇게 선거 운동에 활용될 정도로 한류의 인기가 엄청나다는 건데 그런 중남미에서도 한류 열풍이 가장 강한 곳 중의 하나가 멕시코다. 얼마 전에 멕시코 대통령이 방탄소년단의 공연 회차를 늘려달라고 우리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냈고, 방탄소년단을 대통령궁에 초청하기도 했다. 당시 대통령궁 앞에 멕시코인들 수만 명이 방탄소년단을 잠깐이라도 보려고 운집해 장관을 이뤘다.

이러한 한류의 인기가 자연스럽게 한국에 대한 호감과 응원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한 현지인은 인터뷰에서 “남자들은 축구와 관련된 기억 때문에 한국을 좋아하고, 여자들은 한류 때문에 한국을 좋아하니 멕시코에선 남녀가 모두 한국을 좋아하는 셈”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국이 우리도 모르는 새 해외에서 열렬한 호감의 대상이 됐다는 점이 놀랍다.

한류의 강력한 위상은 이번 월드컵에서 케이팝 스타들의 활약으로도 나타났다. 3개국 공동 개최 월드컵이기 때문에 개막식이 각 나라별로 3번 열렸는데, 그중 가장 먼저 진행돼서 이번 대회 공식 개막식 같은 느낌을 준 멕시코 개막식 때 케이팝 뮤지션인 이재가 등장해 북중미 월드컵 주제가를 불렀다.

이것만 해도 놀라운 일인데 심지어 그 안에 ‘또 넘어져도 난, 또 다시 일어나’라는 한국어 가사까지 있었다. 또 미국 개막식에는 블랙핑크의 멤버 리사가 등장해 또다른 월드컵송을 불렀다. 앞으로 있을 결승전 하프타임쇼에는 방탄소년단 출연이 예정돼 있다. 마돈나 등과 더불어 공동 헤드라이너, 즉 공연의 간판으로 섭외됐다.

남의 나라서 열리는 월드컵에서 케이팝 스타들이 얼굴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지난 대회인 2022년 카타르 월드컵 개막식 때는 방탄소년단의 정국이 등장해 대회 주제가를 불렀었다. 케이팝 스타를 내세워야 월드컵 홍보가 된다고 판단했으니까 FIFA와 각 나라 조직위가 이렇게 섭외를 했을 것이다.

이번 월드컵은 한류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와 더불어, 한류의 바탕에 다른 계기가 더해졌을 때 한국에 대한 국민감정까지 극적으로 개선될 수 있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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