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권 침해 문제 다룬 ‘참교육’ 흥행
소년범죄 대책·입법 촉구로 이어져
‘소년 심판’ 등 이전 작품도 재조명
넷플릭스 시리즈 '참교육'이 공개 직후 큰 화제를 모으면서 K-콘텐츠의 사회적 역할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교권 침해와 학교폭력, 사이비 종교, 필수 의료 체계 등 사회의 주요 현안을 다룬 작품들이 잇따라 흥행하면서 콘텐츠가 단순한 즐길 거리를 넘어 사회적 논의를 촉발하는 매개체로 자리 잡고 있다.
16일 콘텐츠 업계에 따르면 지난 5일 공개된 '참교육'은 공개 직후 글로벌 넷플릭스 비영어권 TV 시리즈 부문 1위에 오르며 한국을 포함한 48개국 톱 10에 진입했다.
동명의 웹툰을 각색한 이 작품은 교권 침해와 학교 폭력, 학부모 악성 민원 등으로 무너진 학교 현장을 배경으로 한다. 교권 회복을 위해 신설된 교육부 산하 가상 조직 '교권보호국' 감독관들이 문제 학교에 직접 투입돼 사건을 해결하는 전개로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글로벌 비평가들의 반응도 긍정적이다. 포브스는 '참교육'을 '올해 공개된 최고의 한국 드라마'로 평가했고, 영화·드라마 평점 사이트 로튼토마토에서는 비평가 지수 80%를 기록했다. 국제 드라마 팬덤 사이트 마이드라마리스트(MyDramaList)에서도 8.8점(9800여명 평가)이라는 높은 점수를 받았다.
드라마가 불러온 관심은 실제 정책 논의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법무부는 지난 9일 경기 안산 소년사법통합기관에서 정책 설명회를 열고 '촉법소년 등 소년 재범률 감소 추진전략'을 발표했다. 소년보호 업무를 강화하는 '소년보호정책단'을 신설하고 관련 조직을 확대 개편해 전담 기관을 전국에 구축하겠다는 계획이다.
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도 12일 정책브리핑에서 '참교육'의 화제성을 언급하며 교육부 산하 '교육활동보호국' 신설을 제안했다.
국내 최대 교원 단체인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드라마 공개 이후 "드라마보다 현실이 더 참혹하다"며 성명을 냈다. 교총은 교육활동 관련 소송 국가책임제, 악성 민원 대응 강화, 중대 교권 침해 학생의 학교생활기록부 기재 등 7개 입법 과제를 국회에 건의했다.
'소년심판' 역시 청소년 범죄를 소재로 실제 제도 논의에 불을 지핀 작품으로 꼽힌다. 지난 2022년 공개된 이 작품은 소년부 판사 심은석(김혜수)의 시선을 통해 촉법소년 문제를 비롯한 한국 소년사법 제도의 한계를 조명했다. 넷플릭스 비영어권 1위를 기록하며 글로벌 흥행에 성공했을 뿐 아니라 미국 타임지 선정 '2022년 넷플릭스에서 봐야 할 최고의 한국 드라마 10편'에 이름을 올렸다. 해당 작품 공개 이후 법무부는 같은 해 6월 촉법소년 연령 하향을 추진하기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고, 10월에는 형사처벌 가능 연령을 현행 만 14세에서 13세로 낮추는 내용의 소년범죄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인권단체의 반대로 법 개정으로 이어지진 못했지만, 촉법소년 연령 기준을 둘러싼 논쟁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의료계의 구조적 문제를 다룬 작품도 주목받았다. 지난해 공개된 '중증외상센터'는 외상외과 전문의 백강혁(주지훈)이 인력 부족과 예산난에 시달리는 병원 시스템 속에서 환자를 살려내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공개 직후 국내 넷플릭스 시리즈 순위 1위에 올라 22일 연속 정상을 지켰고, 해외에서도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순위 집계 사이트 플릭스패트롤 기준 2위를 기록했다. 넷플릭스는 지난해 1분기 실적발표에서 '중증외상센터'를 대표적인 비영어권 흥행작으로 꼽으며 누적 시청 수가 3100만회에 달한다고 밝혔다. 드라마 인기를 계기로 외상외과 전문의 부족과 이를 키울 지원 체계 미비 등 필수의료 공백 문제가 재조명됐다.
국내 유일의 정부 지원 외상전문의 양성 기관인 고대구로병원 중증외상전문의수련센터가 예산 삭감으로 문을 닫을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필수의료 지원 체계를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사이비 종교의 민낯을 고발한 다큐멘터리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2023년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나는 신이다: 신이 배신한 사람들'은 기독교복음선교회(JMS) 총재 정명석의 성범죄 의혹을 비롯해 오대양 집단 자살 사건, 아가동산, 만민중앙교회 등 한국의 대표적인 사이비 종교 집단의 실체를 추적했다.
해당 작품은 공중파 시사교양 PD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를 통해 그동안 지상파 방송의 틀 안에서 다루기 어려웠던 소재를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법원이 JMS 측의 방송 금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하면서 오히려 관심이 집중됐고, 공개 직후 피해자들의 추가 증언과 관련 경험담이 확산되기도 했다.
검찰총장이 엄정 대응을 주문하면서 수사에 탄력이 붙었고, 결국 정명석은 지난해 여성 신도 성폭행 등의 혐의로 징역 17년형을 확정받았다. 방송 콘텐츠가 피해 증언과 사법 절차, 공론장 형성에까지 영향을 미친 대표 사례로 꼽힌다. 제작진은 지난해 후속작 '나는 생존자다'를 공개하며 형제복지원 사건, 지존파,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등 한국 현대사의 또 다른 비극으로 시리즈를 확장했다.
업계 관계자는 "콘텐츠가 직접 법과 제도를 변화시킨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사회적 관심을 환기하고 다양한 논의를 촉진하는 역할은 충분히 할 수 있다"며 "콘텐츠 산업의 영향력이 경제적 효과를 넘어 문화·사회적 영역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혜선 기자 hslee@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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