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욱 부국장 겸 정치부장
정치는 정말 역동적이다. 썰물처럼 빠져나가던 민심이 밀물처럼 밀려드는 데 불과 2주도 걸리지 않았다.
최근 에너지경제신문과 리얼미터가 내놓은 정당 지지도 조사 결과는 국민의힘에 오랜만에 찾아온 가뭄 끝의 단비다. 국민의힘은 44.3%를 기록하며 38.0%에 그친 더불어민주당을 오차범위 밖인 6.3%포인트 차로 따돌렸다. 민주당이 3주 연속 하락세를 타며 10개월 만에 30%대로 주저앉은 사이, 국민의힘은 완연한 상승세를 타며 정국 주도권을 쥔 모양새다. 수치만 보면 보수 진영이 다시 대안으로 우뚝 선 것처럼 보인다.
과연 그럴까? 이 대목에서 우리는 정치가 가진 ‘착시의 덫’을 경계해야 한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지만, 숫자를 해석하는 인간의 탐욕은 언제나 거짓을 낳기 때문이다. 가장 위험한 착각에 빠진 인물은 다름 아닌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다. 불과 보름 전만 해도 그는 지방선거 과정에서 불거진 책임론과 사퇴 압박에 시달리던 ‘시한부 대표’였다. 그런데 지지율 역전이라는 성적표가 나오자마자 태도가 돌변했다. 사퇴론을 단칼에 일축하더니,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빌미로 대여 전면전을 선언하며 정치적 생명 연장을 꿈꾸고 있다. 지지율 상승을 자신의 리더십에 대한 재평가로 아전인수하고 있다. 참으로 대담하고도 궁색한 변신이다.
정치 분석가들과 여론조사 전문가들의 냉정한 진단은 장 대표의 생각과 정반대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지금 국민의힘 지지율이 오른 본질적인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는 이재명 대통령의 공소취소 추진과 ‘명청 갈등’으로 대변되는 민주당의 자폭이다. 둘째는 고환율과 고물가, 전월세 폭등 등 ‘민생경제 파탄’으로 인한 민심 이반이다. 마지막으로 지방선거와 재·보궐선거를 통해 화려하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한동훈 무소속 의원이라는 보수진영의 미래에 대한 희망과 기대감이다. 여기에 장 대표가 낄 자리는 없을 것이다.
누구나 잘 아는 ‘호가호위’(狐假虎威)를 보자. 여우가 호랑이의 위세를 빌려 온갖 짐승을 겁주며 자신이 동물의 왕인 양 으스댄다는 이야기다. 지금 장 대표의 처지가 딱 이 여우 같다. 맹수들이 도망치는 이유는 여우의 뒤에 서 있는 오세훈과 한동훈이라는 ‘호랑이’가 무섭기 때문이고, 민주당이라는 사냥감이 스스로 넘어진 덕분이다. 그런데 장 대표라는 ‘여우’는 국민의힘 맨 앞에서 걷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짐승들이 자기 앞에 무릎을 꿇었다며 으스대고 있다. 참으로 민망한 풍경이 아닐 수 없다.
맹자(孟子)는 실체 없는 허세로 주변을 속이고 스스로 만족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제인교처’(齊人驕妻)라는 우화로 꼬집었다. 제나라의 한 남자가 매일 밖에서 귀인들을 만나 대접을 받고 왔다고 아내에게 자랑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공동묘지를 기웃거리며 제사 음식을 구걸해 먹은 것에 불과했다는 이야기다. 장 대표가 외치는 대여 투쟁의 선명성과 당 장악력의 실체는 과연 무엇인가. 자신이 뿌린 씨앗이 아니라, 여당의 실책과 보수 진영 내 차기 주자들이 차려놓은 밥상에서 떨어진 이삭을 주워 먹으며 얻은 ‘구걸한 권력’ 아닌가. 그것을 자신의 정치적 체급이 커진 것으로 오판하는 순간, 파멸의 서막은 시작된다.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에는 ‘마속’ 이야기가 나온다. 촉나라의 마속은 제갈공명의 후광으로 얻은 성과를 자신의 지략으로 착각했다. 그 결과 마속은 가정(街亭) 전투에서 대패해 촉나라의 대업을 통째로 말아먹었다. 그 자신도 군율에 따라 참수를 당했다. 장 대표가 지금의 지지율 상승이라는 착시를 믿고 자의적으로 정국을 해석하며 당 장악력 키우기에 골몰한다면 국민의힘을 나락으로 밀어넣는 ‘제2의 마속’이 되는 것은 시간 문제다.
여론조사는 바람과 같다. 언제든 방향을 바꾸고, 언제든 잦아든다. 전문가들이 지적하듯 조사 방식에 따른 정치 고관여층의 일시적 결집일 수도 있으니, 정치 지형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확대 해석하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정당 지지율은 당 대표 개인의 방어막이 아니며, 사퇴론을 일축하기 위한 면피용 도구는 더더욱 아니다. 장 대표는 지금이라도 자신의 진짜 실체를 마주해야 한다. 호랑이의 위세에서 벗어나야 한다. 호가호위하는 여우의 결말은 사냥꾼의 덫이다.
권순욱 부국장 겸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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