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수도 테헤란의 이슬람혁명 광장에서 14일 한 여성이 이란 국기를 들고 미국과의 협상을 반대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AP 연합뉴스
이란 수도 테헤란의 이슬람혁명 광장에서 14일 한 여성이 이란 국기를 들고 미국과의 협상을 반대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AP 연합뉴스

미국과 이란이 전쟁 발발 106일 만에 종전을 위한 기본 합의에 도달했다.

양국은 오는 19일 종전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공식 체결하고, 향후 60일 동안 영구 종전과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본격적인 본 협상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번 합의는 양국의 팽팽한 대치 속에서 파키스탄과 카타르 등 중재국들의 긴박한 막후 외교가 빛을 발한 결과로 평가된다. 최악의 중동 대전으로 치닫던 전면전의 위기에서 벗어나며 국제사회는 일제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다.

하지만 이번 합의는 완전한 평화 정착이 아닌, 더욱 치열하고 광범위한 ‘2차 외교 전쟁’의 서막에 불과하다는 신중론이 지배적이다.

앞으로 양국에게 주어진 60일의 추가 협상 기간은 이란의 핵물질 처리와 해외 동결자금 해제라는 휘발성 강한 핵심 의제를 두고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주도권 싸움을 벌이는 거대한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이란 측이 선제적으로 공개한 합의안에 따르면, 양국은 60일간의 본 협상 기간에 핵 문제와 관련한 최종 합의 도달 및 미국이 부과해 온 대이란 경제 제재의 완전한 해제를 목표로 세부 조율에 착수한다. 특히 이란이 해외에 묶여 있는 240억 달러 규모의 동결 자산 중 절반을 우선 반환받고, 나머지 절반의 해제 방안을 두고 협상을 이어간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아울러 양국은 우라늄 농축 중단, 고농축 우라늄 비축분의 사후 처리, 대이란 제재의 단계적 완화, 이란의 경제재건 프로그램 등을 테이블 위에 올릴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국제사회의 또 다른 우려 사항인 이란의 탄도미사일 개발 문제는 본 협상 의제에서 제외된 것으로 전해져 향후 불씨를 남겼다.

본 협상 전선에서 가장 가파른 대립각이 형성될 지점은 단연 이란의 ‘핵 프로그램’ 처리 문제다. 미국은 이번 종전 협정을 기회로 이란의 핵무장 가능성을 뿌리째 뽑아내겠다는 단호한 구상을 세운 반면, 이란은 체제 안정과 주권 수호의 최후 보루인 핵 능력을 결코 완전히 포기할 수 없다는 완강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워싱턴이 요구하는 조건은 명확하고 강경하다. 이란이 그동안 축적해 온 고농축 우라늄을 비롯한 모든 핵물질을 즉각 제3국으로 국외 반출하거나 영구적으로 폐기하라는 것이다. 이에 더해 향후 이란 영토 내에서 어떠한 형태의 핵물질 농축 활동도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초강력 사후 통제 장치를 제도화하겠다는 심산이다.

고농축 우라늄의 이란 내 폐기 가능성에 대해 미국이 일부 타협의 여지를 열어두었다는 관측도 나오지만, 추가적인 농축 금지와 상시적인 검증 체계 구축을 둘러싸고는 초반부터 격렬한 설전이 불가피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합의 발표 직전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과거 오바마 행정부 시절의 이란 핵 합의(JCPOA)를 “핵무기로 가는 순탄한 길을 열어준 사상 최악의 합의”라며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어 자신이 이란과 맺을 새로운 합의는 이와 정반대로 이란의 핵무기 확보를 완벽하게 차단하는 거대한 장벽이 될 것이라고 천명하며, 이번 기회에 이란의 확실한 비핵화 약속을 받아내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대외에 공표했다.

이에 맞서는 테헤란의 방어 논리 역시 완고하다. 이란은 이미 농축된 우라늄의 국내 보유와 평화적 목적의 핵 프로그램 운용은 국가 주권에 속하는 영역으로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선을 긋고 있다.

이란의 고위 관료들은 국제원자력기구(IAEA) 및 서방과의 외교 무대마다 자국의 핵 프로그램이 전적으로 전력 생산 등 평화적 목적에 한정되어 있으며, 역사적으로도 핵무기 개발을 추구한 적이 없다는 공식 입장을 거듭 되풀이해 왔다.

여기에 더해 중동의 군사 강국이자 이란의 최대 숙적인 이스라엘의 존재는 협상의 향방을 가르는 거대한 변수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그동안 국제사회가 시도해 온 대이란 유화책에 대해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태도를 보여왔다. 그는 “불완전하고 나쁜 합의는 안 하느니만 못하다”며, 미국과 이란 사이에 체결되는 그 어떤 외교적 합의도 이스라엘을 구속할 수 없음을 명시했다. 나아가 자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상황이 오면 언제든 독자적인 무력 행사를 감행하겠다는 초강경 입장을 유지하고 있어, 본협상 타결의 막판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해외 금융기관에 동결된 수백억 달러에 달하는 이란 자산의 해제 타이밍과 방식을 둘러싼 수싸움도 핵 문제 못지않은 고차방정식이다.

오랜 기간 지속된 강력한 경제 제재로 심각한 민생고와 대규모 민중봉기까지 겪은 이란 정부 입장에서, 대규모 자금의 즉각적인 유입과 제재 철회는 이번 종전 협상을 수용한 대내외적인 최대 명분이자 사활이 걸린 과제다. 이란은 협상 시작과 동시에 자국의 자산이 신속하게 동결 해제되어 파탄 상태에 빠진 국내 경제를 재건하는 마중물이 되기를 강력히 원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 행정부는 워싱턴 정가 내부의 매파적 반발을 의식해 조건 없는 자금 해제를 단호히 거부한다는 방침이다. 대신 이란의 실질적인 비핵화 이행 수준과 연동하여 동결 자금을 단계적으로 풀어주는 이른바 ‘행동 대 행동’의 원칙을 철저히 고수할 것으로 관측된다. 동결 자금을 즉시 회수해 체제 안정에 활용하려는 이란과, 이를 협상 테이블의 마지막 지렛대로 쥐고 흔들려는 미국의 줄다리기가 극에 달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결과적으로 이번 양해각서 체결은 평화의 완성이 아니라, 단지 60일이라는 한시적인 유예기간을 벌어둔 ‘시한부 휴전’에 가깝다는 냉정한 평가가 나온다.

정교하게 설계된 미국의 대이란 제재 시스템과 견제 전략, 이에 맞서 정권의 생존을 걸고 주권 방어 논리를 펼치는 이란의 배수진이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전면전의 직접 당사자이자 이란의 역내 팽창을 저지하려는 이스라엘의 군사적 압박, 그리고 미·란 양국 지도부를 사방에서 압박하는 자국 내 보수 강경파들의 정치적 셈법까지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있다. 영구 종전과 지속 가능한 평화체제 구축은 향후 60일간의 본 협상 테이블에서 판가름 날 전망이다.

이규화 대기자(david@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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