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투표 찬성 45%·반대 55%로 부결 유력

우파 국민당 “인프라 마비·야외 과부하” 주장

정부·재계 “국가 망치는 자해 행위” 반대 독려

통과 시 EU 회원국 교류 전면 중단 위기

‘인구 1000만명 제한’ 스위스 국민투표. EPA=연합뉴스.
‘인구 1000만명 제한’ 스위스 국민투표. EPA=연합뉴스.

인구를 강제로 제한하려던 스위스의 파격적인 시도가 결국 불발로 끝날 기미를 보이고 있다. 2050년까지 국가 전체 인구를 1000만명 이하로 통제하자는 골자의 국민 발의안이 유권자들의 문턱을 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로이터 통신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스위스 공영 SRF 방송이 14일(현지시간) 국민투표 마감 직후 찬성 45%, 반대 55%로 집계된 추정치를 발표하며 해당 발의안의 부결을 전망했다. 우편 및 현장 투표로 진행된 스위스 시민들의 표심은 현상 유지 쪽으로 기운 모양새다.

이번 투표를 주도한 세력은 우파 포퓰리즘 성향의 의회 내 최다 의석을 보유한 스위스국민당(SVP)이다. 이들은 최근 외부 유입 인구가 급증하면서 국가 기간 시설이 과부하에 걸리고 주택 임대료가 폭등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국가 정체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며 이번 발의안을 ‘지속가능 계획’으로 명명하고 오랫동안 이민 문제를 쟁점화해왔다.

만약 이 발의안이 통과됐다면 스위스 정부는 인구 통제를 위해 극단적인 조치를 취해야만 했다. 인구가 950만명에 도달하는 시점부터 난민 수용과 가족 초청 이민, 거주 허가증 발급 등을 줄줄이 제한해야 했기 때문이다. 특히 유럽연합(EU)과의 핵심 조약이자 양측 시민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는 협정마저 폐기해야 할 상황에 직면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정부와 경제계는 이번 발의안을 강력히 비판해왔다. 스위스 당국과 재계는 이 안을 두고 “자해적 행위”라고 강도 높게 비판하며 국민들에게 부결을 호소했다. 지난 수십 년간 유입된 이민자들 덕분에 의료, 보건, 금융, 제약, 기술 등 산업 전반에 필수적인 노동력과 전문 인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여론조사 결과가 팽팽하게 대립하면서 정부와 재계는 투표 직전까지 긴장을 늦추지 못했다. 가뜩이나 최대 교역 상대인 EU와의 관계가 약화되면 유럽 단일 시장 접근에 차질이 생겨 국익이 훼손될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다. 일부 전문가들이 이번 투표를 영국의 EU 탈퇴에 비견하며 ‘스위스판 브렉시트’라고 부른 이유도 여기에 있다.

통계 자료 역시 이민이 스위스 경제 성장의 견인차였음을 증명한다. AP통신에 따르면 스위스와 EU가 상호 거주 및 취업 제한을 완화한 2002년 이후 스위스 인구는 23% 늘어 작년 말 기준 910만명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국내총생산(GDP)도 24%나 성장했다.

현재 스위스 인구 중 외국인 비율은 약 28%에 달한다. 현재의 이민 추세가 지속될 경우 2040년대 초에는 자연스럽게 1000만명을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 스위스의 해외 출생자 비율은 32%로, 38개 회원국 중 룩셈부르크와 호주에 이어 세 번째로 높다. 다만 아프리카나 서남아시아 등 빈국 출신이 많은 다른 유럽국들과 달리, 스위스로 오는 이주민들은 주로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등 인접한 EU 회원국 출신이라는 특징이 있다.

스위스 유권자들은 지난 50년간 이민 문제를 두고 끊임없이 국민투표를 벌여왔으나, 통과된 사례는 2014년 ‘대규모 이민 반대’ 투표가 유일할 정도로 이민 조절에 신중한 태도를 보여왔다. 연간 네 차례씩 국민투표를 통해 주요 정책을 직접 결정하는 독특한 직접 민주주의 체제 속에서, 스위스 시민들은 이번에도 급격한 고립 대신 경제적 실리를 선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권순욱 기자(kwonsw8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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