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바오로 대성당 특별미사 연설…“6·15 선언, 희망의 불씨 여전”
‘대북 전단·확성기 중단’ 국제사회에 알리며 체제 보장 약속
이재명 대통령이 14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로마 성 바오로 대성당에서 열린 특별미사 연설을 통해 “흡수통일이나 일방적 체제 경쟁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대북 전단 살포 및 확성기 방송 중단 등 현 정부의 선제적 유화 조치를 국제사회에 공식화한 것으로 종교가 가진 도덕적 권위를 지렛대 삼아 국내 강경 여론의 반발을 돌파하고,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한 외교적 승부수로 풀이된다.
이 대통령은 이날 유흥식 추기경을 비롯한 내외 귀빈이 참석한 가운데 사도 바오로의 영성이 깃든 대성당 연단에 섰다. 이 대통령은 우선 우크라이나와 중동의 무력 충돌을 거론하며 “오늘날 세계는 어느 때보다 깊은 갈등과 불확실성 속에 놓여 있고, 국제사회 곳곳에 분열과 대립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한반도 역시 단절과 대결의 시대로 되돌아섰다고 짚으면서도, 26년 전 남북 정상이 합의한 ‘6·15 남북공동선언’을 돌파구로 제시했다. 이 대통령은 6·15 선언을 “오랜 적대와 긴장을 넘어 대화와 협력의 가능성을 전 세계에 알린 역사적인 전환점”이라고 평가하며 “지금도 그 희망의 불씨가 살아있다고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번 연설의 무게 중심은 대북 적대행위 중단의 정당성을 국제적으로 확보하는 데 쏠렸다. 이 대통령은 “대한민국 정부는 지난해 출범 이후 전단 살포와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을 비롯한 선제적인 긴장 완화 조치를 추진해 왔다”며 일방적 체제 경쟁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점을 거듭 밝혔다.
나아가 이 대통령은 “남북 간의 우발적 충돌을 방지하고 군사적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도 꾸준하게 이어가겠다”며 “정전 상태를 넘어 지속 가능한 평화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도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할 생각”이라고 공언했다.
이 대통령은 현 정부 대북 정책의 도덕적 정당성을 촛불집회 등 대한민국의 민주화 역사와 연결 지었다. 이 대통령은 “독재와 억압의 시대를 넘어 민주주의를 발전시켰고, 경제 위기와 사회적 격랑 속에서도 우리는 총과 칼이 아닌 촛불로, 폭력이 아닌 평화로, 냉소가 아닌 연대로 짙은 어둠을 밝혀왔다”며 국민적 위기 극복 DNA를 역설했다. 아울러 혹독한 박해를 견뎌낸 한국 가톨릭교회가 인간의 존엄과 평화를 지켜온 버팀목이었다는 점도 빼놓지 않았다.
국제사회를 향한 대한민국의 역할도 약속했다. 이 대통령은 “민주주의가 길어 올린 빛과 과학기술의 혁신으로 더욱 평화롭고 자유로운 세상을 만드는 데 힘을 모으겠다”며 “분열이 있는 곳에 연대를 더하며 평화가 인류 공동의 유산이 될 수 있도록 국제적 책임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이 대통령은 연설 후반부에서 내년 서울에서 열리는 가톨릭 세계청년대회에 대한 교황청의 적극적인 관심을 요청했다. 이 대통령은 “세계 각국의 청년들이 전선과 철조망, 국경의 제약을 넘어 이 자리에 함께할 수 있길 바란다”며 대한민국 정부 차원의 전폭적인 뒷받침을 약속했다.
끝으로 이 대통령은 이사야서 2장 4절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는 구절과 2000년 전 예수 그리스도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는 발언을 차례로 인용했다. 이 대통령은 “이 말씀이 오늘날 우리 청년들에게 위로와 용기로 전해지길 바란다”며 “한반도의 평화가 세계평화로 이어지고, 세계의 연대가 다시 한반도 평화를 굳건하게 만드는 선순환을 만들어 가길 희망한다”고 연설을 마무리했다.
김윤정 기자(kking152@dt.co.kr)실시간 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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