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철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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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시장경제는 거센 도전에 직면해 있다. ‘K자 양극화’에 대한 대중의 불만은 시장경제체제에 대한 회의론으로 번진다. 여기에 정치권의 포퓰리즘과 반기업 정서가 더해지면서, 우리 사회에서 자본주의의 핵심동력인‘기업가 정신’이라는 단어는 사라진지 오래다. 지금으로부터 50여년 전인 1971년, 미국도 그랬다. 사회주의의 바람은 거셌으며, 기업과 기업인들의 입지는 좁아졌다. 이때 자유시장경제 체제의 보루를 쌓은 것이 유명한 ‘파월 메모랜덤’(Powell Memorandum)이다.

‘파월 메모’는 당시 변호사로 훗날 미 연방대법관이 됐던 루이스 파월(Lewis F. Powell Jr)이 기업인들의 모임인 미 상공회의소에 보낸 보고서다. 이 보고서는 미국 사회의 물결을 되돌려 놓았다. 1960년대말 미국은 반전과 환경·소비자 권익 운동에 대학가의 좌편향이 가세하며 기업에 대한 전례 없는 공격이 쏟아지던 시기였다. 여론은 기업을 사기꾼으로 보고, 대학은 반자본주의를 가르치며, 정부는 규제 폭탄을 던지고, 브레튼우즈 체제의 붕괴로 경제마저 무너지는 상황이었다.

이때 파월은 기업인들이 단순히 좋은 상품을 만들어 파는 수동적 태도에 머문다면 시장경제체제 자체가 붕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학계, 언론, 정계, 사법부를 아울러 시장경제를 지키기 위한 운동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 메모는 헤리티지 재단 등 싱크탱크의 설립과 레이건 행정부의 규제 완화로 이어지며, 미국이 성장을 지속하고 세계 패권국을 유지하는 토대가 됐다.

‘파월 메모랜덤’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시장경제는 공기처럼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생태계를 지켜내야 할 최전선의 주체는 정부나 정당이 아닌, 기업인들 스스로라는 점이다.

하지만 우리 기업인들을 보면 아쉬운 부분이 적지 않다. 최근 사회를 강타하고 있는 ‘N% 성과급’ 논란을 보자.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성과급으로 배분해야 한다는 노조의 주장은 시장경제의 근간인 ‘주식회사 제도’에 역행하는 것이다. 성과급은 영업이익이 아닌 순이익이나 EVA(경제적 부가가치)를 기준으로 하는 게 글로벌 스탠더드다. 영업외 비용과 각종 세금을 뺀 이익을 기준으로 하는 게 종업원뿐 아니라 기업의 주인인 주주들의 이익에도 맞고, 기업의 지속가능성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이런 원칙을 지키는 것은 기업인들에 주어진 의무다. 그런데 SK하이닉스가 덜컥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성과급으로 달라는 노조의 요구에 합의하면서 ‘N% 성과급’의 불씨가 한국 사회 전반에 번지고 있다. 원칙이 무너지자 산업현장이 대혼돈을 겪고 있는 것이다. 영업이익의 N%를 성과급으로 배분하는 것은 주주들에 대한 일종의 배임 행위다.

기업인들을 절대적 ‘갑’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실제론 ‘을’인 경우가 적지 않다. 대기업 기업인들은 하청기업의 근로자와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았는데도 수많은 하청기업 노조들의 요구가 있을 경우 단체교섭에 응해야 한다. 노란봉투법 때문이다. 노조가 예전같은 ‘불법 파업’을 벌이더라도 손해배상을 청구할 길도 사실상 막혀 있다. 역시 ‘살라미 조항’을 통해 불법 손배소를 제기할 길을 막아놓은 노란봉투법 때문이다. 노조가 생산라인을 멈춰세우겠다고 위협해도 대체근로자를 활용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세계경제포럼 (WEF)이나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 조사에서 보듯 세계 최고 수준의 노동시장 경직성 때문이다. 그 결과는 모두가 알다시피 ‘귀족 노조’의 탄탄한 ‘밥그릇 지키기’에 따른 노동시장 이중화와 청년 일자리 감소다.

1980년대 후반 LG전자(당시 금성사) 노조도 지금의 삼성전자 노조처럼 ‘전투적’일 때가 있었다. 하지만 1993년 LG전자 노조는 회사가 살아야 내 일자리도 있다며 노선을 180도 전환했다. LG전자가 치열한 글로벌 경쟁 속에서 지금처럼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노조의 이런 ‘변신’이 큰 역할을 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세계 1위 자동차 업체인 일본 도요타자동차의 노조는 최근 봄철 투쟁인 ‘춘투’(春鬪) 패러다임을 폐기하고 노사의 상생협력을 앞세운 ‘춘공’(春共)으로 전환했다. 인공지능(AI) 혁명 과 미래차 격변기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구시대적 투쟁 관행을 스스로 내려놓은 것이다. 그러면서 사측에 “회사의 변화를 기다리지 말고 우리 스스로 움직여야 한다”며 생산성 향상과 원가 절감을 선제적으로 제안했다. AI 시대 일반화될 휴머노이드 보급에 따른 일자리 감소 문제를 함께 논의하자고도 했다.

도요타는 2025 회계연도(2025년 4월~2026년 3월)에서 매출은 사상 최초로 50조엔(약 474조원)을 넘어섰으나 연결순이익은 3조8480억엔(36조원)으로 21.5% 감소했다. 미 행정부의 고율 관세 부과와 중동 전쟁에 따른 원자재가격 부담으로 인한 것이다. 노조의 ‘춘공’은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스페이스X의 상장으로 ‘조만장자’에 오른 테슬라의 최고경영자(CEO)인 머스크와 트럼프 미 대통령 간 관계를 보면서 부럽다고 느꼈었다. 정부효율부(DOGE) 수장으로 일했던 머스크가 퇴임 직후 트럼프 대통령이 사활을 걸고 추진한 세금 감면 및 대규모 지출 법안(‘크고 아름다운 법안’)을 “국가 부채를 5조달러나 늘릴 거면 도대체 DOGE를 왜 만든 것이냐”며, “역겹고 혐오스러운 오물(disgusting abomination)”, “완전히 정신 나간 파괴적 행위”라고 맹비난한 장면은 상징적이다. 기업인이 “원칙에 위배된다”며 이렇게 대놓고 국가 국가 최고지도자까지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모습을 대한민국에서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미국 일본뿐만 아니라 대만도, 심지어 ‘노동자 천국’을 표방한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서도 우리처럼 총파업이 연례행사가 될 정도로 노조가 전투적이고 정치적인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반세기 전 파월이 던진 경고는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시장경제를 유지하고 발전시켜 나가야할 책임은 기업인들에도 있다.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개선하고, 협력사와의 상생을 실천하며, 혁신을 통해 사회적 난제를 해결하는 한편으로 시장경제를 허물어 뜨릴 수 있는 노조의 주장에는 단호해야 한다. 젊은 세대가 기업가 정신을 탐욕이 아닌, 사회를 발전시키는 가장 위대한 혁신의 에너지로 인식하도록 교육적 기반을 다지는 일도 기업인들의 몫이다. 인류가 수천년의 정체에서 깨어나기 시작한 자본주의의 맹아기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노동자여, 단결하라’고 했다. 지금의 우리 사회는 ‘기업인들이여, 단결하라’라는 구호가 나와야 할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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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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