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자산·소득 최하위 청년 비중 5년 새 두 배
집값 상승에 자산 이동성 약화…AI는 일자리 위협
한은 "청년 자산 형성 경로 넓혀야"
청년층이 소득을 벌어도 집값 상승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자산을 쌓기 어려워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무주택 청년의 소득과 자산 지위가 동시에 낮아진 가운데 인공지능(AI) 확산으로 일자리와 소득 격차까지 벌어질 경우 청년층이 갈수록 가난해지는 구조가 굳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월급보다 빨리 오른 집값… 청년 자산 사다리 '흔들'
한국은행 조사국이 11일 발표한 '우리 경제 가계 양극화의 실태와 파급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순자산 지니계수는 2017년 0.584에서 2025년 0.625로 빠르게 상승했다. 지니계수는 수치가 높을수록 자산이 일부 계층에 편중됐다는 의미다.
한은은 부동산 가격 상승을 자산 격차가 확대된 핵심 원인으로 지목했다. 순자산 지니계수의 변동 요인을 분석한 결과 부동산 자산의 기여도가 가장 두드러졌다. 부동산을 주로 보유한 고령층으로 자산이 집중되면서 전체 순자산에서 60대 이상이 차지하는 비중도 상승했다. 반면 다른 연령대의 보유 비중은 일제히 낮아졌다.
이에 따라 청년층에서는 소득이 높더라도 자산 상위 계층으로 올라가지 못하는 현상이 뚜렷해졌다. 20~34세 청년 가운데 소득과 순자산이 모두 상위 40%에 속하는 '고소득·고자산' 계층의 비중은 하락세를 보였다. 자산은 하위 40%지만 소득은 중상위권인 청년층이 자산 상위 계층으로 이동할 확률도 지속적으로 낮아졌다.
이재호 한은 조사국 조사총괄팀 차장은 "청년층은 경제 진입기이기 때문에 고령층이나 중장년층보다 부동산 보유가 적을 수밖에 없다"며 "이런 상황에서 부동산 가격이 빠르게 오르다 보니 자산 격차가 크게 벌어졌고, 상위 자산계층으로 이동할 확률도 낮아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로 2012년과 2025년을 비교하면 유주택 가구의 순자산과 소득 분위는 모두 상승했지만 20~29세 무주택 청년층은 두 지표가 모두 하락했다. 순자산과 소득이 모두 최하위 20%(1분위)인 가구에서 20·30대가 차지하는 비중은 2020년 7.9%에서 2025년 15.2%로 배 가까이 늘었다.
◇AI까지 청년 일자리 위협… 소비·성장에도 '찬물'
소득 격차도 다시 벌어질 조짐을 보였다. 정부의 재분배 효과를 반영한 처분가능소득 지니계수는 2023년 0.323에서 2024년 0.325로 반등했다. 공적이전소득을 제외한 시장소득 기준 지니계수는 더 큰 폭으로 올랐다.
한은은 최근 소득 격차 확대가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 고용형태보다는 산업 간 임금 차이에서 두드러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IT 부문에서는 성과급을 중심으로 임금이 크게 오른 반면 비IT 부문의 임금 상승은 상대적으로 제한되면서 'K자형 성장'이 가계 소득 격차로 이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AI 확산도 청년층의 소득 기반을 약화시킬 수 있는 요인으로 꼽혔다. 한은 설문조사에서 청년층은 다른 연령대보다 AI로 일자리를 잃을 가능성을 높게 평가했다. 실제로 생성형 AI가 본격적으로 확산한 이후 AI 노출도가 높은 산업에서는 청년층 고용이 감소한 반면 50대 고용은 증가하는 모습이 나타났다.
청년층의 자산과 소득 기반이 동시에 약화하면 내수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청년층은 주거비 부담이 빠르게 늘어난 데다 주택을 구입하기 위해 더 많은 돈을 저축해야 해 당장 소비에 쓸 수 있는 여력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 차장은 "주택을 구입하려면 더 많은 자산을 축적해야 하고, 결국 저축이 늘어나면서 현재 소비가 줄어드는 모습이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자산 격차 확대는 생산성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분석됐다. 120개국의 1980~2023년 자료를 분석한 결과 자산 상위 10%의 보유 비중이 1%포인트 상승하면 2년 뒤 총요소생산성이 0.16%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자산 상위 10%의 순자산 점유율은 2022년 43.0%에서 2025년 46.1%로 상승했다.
한은은 부동산과 고령층에 자산이 묶이는 '자산 잠김'과 고령층이 다른 고령층으로부터 재산을 물려받는 '노노상속'이 자원 배분의 비효율을 심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자산이 늘어난 고령·고자산층은 상대적으로 소비성향이 낮아 자산 가치 상승이 내수 회복으로 이어지는 효과도 제한적이다.
이에 한은은 청년층의 자산 형성 수단을 주택에만 의존하지 않도록 투자 경로를 다양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 차장은 "청년·무주택자의 내 집 마련 정책뿐 아니라 주식시장의 안정적인 투자 환경을 조성해 가계의 자산 형성 채널을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며 "주식과 채권 등으로 자금이 유입돼 기업으로 선순환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진아 기자 gnyu4@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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