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닷새간의 일정을 마치고 9일 출국했다. 그의 방한은 한국 AI 산업의 위상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었다. 황 CEO는 이번 방한에서 SK하이닉스와의 전략적 파트너십 확대, 네이버·SK텔레콤과의 AI 인프라 협력 등 굵직한 성과를 잇따라 발표했다. 재계 인사들과 연쇄 회동을 가졌고 주요 사업장을 방문하면서 한국 산업 생태계 전반을 살펴봤다. 그의 방한은 정부와 산업계, 학계는 물론 일반 국민의 이목까지 집중시켰다. 그는 "한국 기술 없이는 첨단 AI 인프라를 구축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남기고 한국을 떠났다. 한국이 글로벌 AI 공급망의 핵심 축임을 세계 AI 산업의 중심에 선 인물이 공개적으로 인정한 것은 자부심을 가질 만한 일이다.
그렇다고 들떠서는 안 된다. 냉정하게 돌아봐야 할 대목이 있다.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AI 생태계 전반의 주도권은 여전히 제한적이다. 차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 공급이 늘어날수록 수출은 증가할 수 있다. 그러나 공급망의 핵심 역할을 수행하는 것과 산업의 규칙을 만드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플랫폼과 표준을 가진 기업은 시장을 설계하지만 부품 공급자는 그 시장에 참여할 뿐이다. 지금과 같은 구조가 고착화된다면 한국은 AI 시대에도 제조 역량은 뛰어나지만 생태계 주도권은 확보하지 못하는 상황에 머물 수 있다. 물론 엔비디아와의 협력은 한국 산업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중요한 기회다. 문제는 협력이 종속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강렬했던 젠슨 황의 4박 5일은 한국 AI 산업의 잠재력과 경쟁력을 확인시켜준 시간이었다. 동시에 AI 시대의 냉혹한 현실도 보여줬다. AI 시대의 승자는 부품 공급자가 아니라 생태계 설계자다. 독자 기술과 플랫폼을 갖추지 못한다면 남이 만든 질서 안에서 움직일 수밖에 없다. 젠슨 황 열풍이 남긴 가장 중요한 메시지가 바로 여기에 있다. 엔비디아와 협력은 하되 'AI 생태계' 종속은 피해야 한다. 정부는 장기적 연구·개발(R&D) 투자와 인재 양성에 나서고, 기업은 단기 성과에 매몰되지 않는 과감한 도전을 이어가야 한다. AI 기술과 플랫폼 역량을 축적하고 이를 뒷받침할 생태계까지 만들어 AI 시대를 주도해 나가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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