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지선 투표용지 부족 사태, 전국 최소 10개 권역 50여 곳 대학·학생조직 성명

진보강세 지역인 전북대·전남대 등 호남권 대거 가세…“진영 문제 아닌 행정 참사”

전문가 “기성정치 동원 아닌 자발적 참정권 시민운동…진영논리 들이대면 역풍”

대학생들 “음모론 왜곡 사절…투표용지 없었던 민주주의 훼손에 분노한 것”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규탄하며 재선거를 요구하는 ‘잠실 개표소 봉쇄 시위’가 계속되고 있는 8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인근 티켓박스에 재선거를 요구하는 메시지가 붙어 있다. [연합뉴스]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규탄하며 재선거를 요구하는 ‘잠실 개표소 봉쇄 시위’가 계속되고 있는 8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인근 티켓박스에 재선거를 요구하는 메시지가 붙어 있다. [연합뉴스]

6·3 지방선거 당일 발생한 초유의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둘러싼 청년층의 분노가 진영을 넘어 전국 대학가로 확산하고 있다. 수도권 대학에서 시작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규탄 움직임은 충청, 강원, 영남을 거쳐 호남 대학가까지 들불처럼 번졌다.

9일 국내 대학가에 따르면 지난 8일 기준 성명서나 시국선언을 발표한 대학과 학생조직만 전국 최소 10개 권역, 50여 곳에 달한다.

가장 주목할 대목은 이른바 보수 성향이 강한 영남권뿐 아니라 호남 대학가로 규탄 대열이 대거 확대됐다는 점이다. 이는 이번 사태가 특정 진영의 선거 불복이나 유불리를 따지는 쟁점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근간인 ‘참정권 침해’라는 보편적 권리의 문제로 2030 세대에게 인식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전북대 중앙운영위원회는 최근 시국 성명에서 5·18민주화운동 첫 희생자인 이세종 열사를 언급하며 “선관위의 안일함에 참정권이 목소리를 낼 주인을 잃었다. 한 표의 가치는 민주주의의 근간”이라고 비판했다. 원광대, 국립군산대 총학생회 역시 “투표용지조차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행정 참사”, “우리의 한 표, 부족해서는 안 된다”며 선관위의 쇄신을 강도 높게 촉구했다. 광주·전남권에서도 전남대가 9일 학생총회를 소집해 ‘선관위 규탄 결의안’을 상정할 예정이며, 조선대·호남대·국립목포대 학생회 등이 일제히 책임자 문책을 요구하고 나섰다.

실제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빚어졌던 인천 지역의 인하대 총학생회는 “투표용지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유권자를 돌려보내는 것이 진정한 민주국가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대전권 대학과 KAIST가 참여한 공동포럼도 “여야 정쟁을 초월해 민주주의 절차와 시스템 그 자체를 지적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번 현상을 특정 정치 조직이나 진영이 주도하지 않은 ‘탈조직화된 청년 정치 참여’로 진단했다. 허창덕 영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요즘 대학생들은 과거처럼 집단이나 공동체보다 개인의 삶에 관심이 큰 세대지만, 이번 사태는 자신의 투표권과 직결된 만큼 직접적인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자신의 참정권이 침해됐다는 인식이 학생들을 자발적으로 결집하고 움직이게 한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이재묵 한국외국어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지금의 2030세대는 한국이 경제 강국으로 도약하고 민주주의 체제가 공고해진 상태에서 태어난 이들”이라며 “민주주의의 요체이자 기본권인 참정권이 위협받게 되니 들고일어난 것”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대학가에서는 정치권과 언론의 재단하는 진영 논리가 개입되는 것을 강하게 경계하는 분위기다. 사태의 본질은 선거의 정치적 유불리가 아니라, 국가가 보장해야 할 선거 관리 절차와 신뢰가 무너졌다는 데 있다는 것이다.

청년들의 분노는 단순한 캠퍼스 내 성명 발표를 넘어 거리 집회로도 이어지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은 납득할만한 대처가 나올 때까지 멈추지 않을 조짐이다.

익명을 요구한 전북대 재학생 A(25)씨는 ‘부정선거’에 대한 재정의부터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왜 청년들이 부정선거라는 이야기를 입에 담으면 무슨 정치병 걸린 극우 음모론자로 취급하는 지금 상황 자체가 선관위 같은 오만한 기득권을 만들었다”면서 “부정(不正)뜻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올바르지 아니하거나 옳지 못함’이라고 나와있다. 투표용지 부족을 핑계로 제때 선거를 못 치르게 한 게 부정선거가 아니라면 무엇이 부정선거냐”라고 반문했다.

연세대 재학생 B씨(23)는 “부정이라는 말이 어려운 말도 아니다. 한자로 풀이하면 ‘바르지 않다’라는 뜻이다”며 “부정선거라는 용어가 일부 극단적 진영의 선거조작 의심으로 오염된 측면이 있긴 하나, 이미 대한민국 선거에 대한 신뢰에 땅에 떨어진 상황에서 무조건 음모론으로 몰 자격이 있는지 선관위에 직접 묻고 싶다”고 일갈했다.

김윤정 기자(kking152@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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