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기 IT과학바이오부 부장
시계를 돌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2년 전인 2024년 6월 10일, 23개 과학기술계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을 총괄하는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이사장에 김영식 전(前) 국민의힘 의원이 내정됐다는 언론 보도가 나와 과학기술계가 발칵 뒤집어졌다. 당시 김 전 의원 내정설은 수면 아래에서 공공연히 나돌았었다. 그런데 언론을 통해 소식이 전해지자 과학기술계는 황당 그 자체였다. 선임 공고 조차 시작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사장이 사실상 정해졌다는 비정상적인 인사 시스템이 작동한 것이다.
논란이 불거지자 관련 기사는 인터넷에서 삭제됐다. 그로부터 5개월 뒤인 2024년 11월 김 전 의원은 NST 이사장에 정식으로 선임됐다. 내정설이 현실화되기까지 5개월이면 충분했다. 2014년 NST 출범 이후 첫 정치인 출신 이사장 선임이라는 유례 없는 일이 벌어진 순간이었다.
안 그래도 일방적인 정부 R&D 예산 삭감으로 분노에 차 있던 과학기술계는 윤석열 정부의 비정상적인 인사에 참담함을 감출 수 없었다. 무엇보다 R&D 예산 삭감을 옹호한 김 전 의원을 23개 과기 출연연 컨트롤타워 수장에 앉힌 것이다. 과학기술계가 낙하산·보은 인사라고 비판한 것은 당연한 반응이었다.
취임 한 달 만에 김 이사장에게 영욕의 시기가 찾아올 줄 상상이나 했을까. 비상계엄 선포에 따른 내란과 탄핵 정국이 이어졌고, 결국 정권이 바뀌어 이재명 정부가 새롭게 출범했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출연연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찾아왔다. 30년간 출연연 족쇄로 작용했던 연구과제중심제도(PBS)의 단계적 폐지와 전략연구사업 신설, R&D 예산 확대, 공통행정 전문화 도입 등 출연연 혁신과 대전환을 위한 굵직한 정부 정책이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져 나왔다.
이 모든 정책들이 첨예하고 복잡하게 얽혀 있어 23개 과기 출연연 컨트롤타워를 맡고 있는 NST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진 시기였다. 그러나 새 정책들을 출연연 현장에 안착시키려는 NST의 노력은 한동안 보이지 않았다. 김 이사장 역시 정부와 출연연 사이에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해 ‘기능적 공백’을 드러냈다. 오히려 부처는 윗선의 눈치를 보느라 정책 논의 과정에서 NST와 김 이사장을 의도적으로 ‘패싱’하는 듯한 모습까지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김 이사장의 리더십과 NST의 역할은 점점 약화됐다.
지난 4월 대통령 업무보고는 그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김 이사장은 대통령과 국민, 그리고 23개 출연연 종사자 모두에게 출연연의 혁신 노력과 미래 비전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해 실망감을 안겼다. 과학기술계에서는 “NST가 과연 출연연을 지원·육성하는 기관이 맞냐”라는 성토의 목소리가 커졌다.
최근에는 NST가 ‘공통행정 전문화’를 내세워 정부 예산을 받아 ‘돈 잔치’ 한다는 논란도 불거졌다. 공통행정 전문화가 연구 현장의 반발에 부딪혀 답보 상태에 빠진 사이 NST는 관련 예산을 자신들의 배를 채우는데 쓰고 있는 의혹을 받고 있다. 실제, NST는 때아닌 직책수당·감사수당·육아보조수당 등 각종 수당 인상과 신설에 수십 억원의 예산을 낭비하고 있다.
거의 외부 활동이 없는 이사장의 경우 고환율 시대에 이달 캐나다·한국 과학기술학술대회(CKC), 다음달 ‘유럽·한국 과학기술학술대회(EKC)’ 등에 10명 안팎 직원들과 해외 출장을 연달아 떠날 예정이다. 통상 유사한 행사인 CKC·EKC·UKC중 한 곳만 참석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사장은 연달아 두 개 행사 모두에 참석하겠다는 뜻을 꺾지 않고 있다.
NST 소관 부처인 과기정통부는 이를 방관한다는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물론 공공기관장의 임기는 법적으로 보장받아야 할 마땅한 권리이자 가치이다. 다만 임기 보장은 기관의 정치적 중립성과 공공 업무의 안정적 수행을 위해서이지 기관장 자리 보전을 위한 방패가 돼선 안 된다. 기관장 스스로 그에 걸맞은 역할을 다할 때 임기는 보장되는 것이다.
집권 2년차를 시작한 이재명 정부가 AI 3대 강국·과학기술 5대 강국을 목표로 숨 가쁘게 달려가고 있는 지금, 과학기술만이 숨을 돌려선 안 되는 이유다.
이준기 기자 bongchu@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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