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
영미권에는 시장의 본질을 꿰뚫는 서늘한 격언이 있다. “네 말에 돈을 걸어라”(Put your money where your mouth is). 주장이 옳다고 확신한다면 화려한 수사 뒤에 숨지 말고, 실제 자산을 걸어 증명해 보라는 일침이다. 냉혹한 자본주의의 문법이 담긴 이 문장은 오늘날 부동산 시장을 부유하는 수많은 ‘입 전문가’들의 허상을 정교하게 해부한다. 많은 이들이 자극적인 전망과 공포를 동력 삼아 대중의 초조함을 자양분으로 삼는다.
그러나 ‘예측이 엇나갔을 때 무엇을 책임질 것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면 대다수는 슬그머니 고개를 숙인다. 말의 무게는 가볍고 자산의 무게는 무거운 법이다. 책임지지 않는 자기 확신만큼 시장을 교란하고 대중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독소도 드물다.
우리는 오랫동안 전문가라는 독점적 권위에 의존해 왔다. 지식의 비대칭성이 지배하던 시절에는 그들의 한마디가 곧 시장의 이정표였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나 실시간으로 실거래가를 추적하고, 공급 물량을 계량화하며, 글로벌 거시경제 지표를 스마트폰으로 확인하는 지식 민주주의의 시대다. 전문가들이 쌓아 올린 정보의 성벽은 이미 허물어졌다. 그런데도 일부 지식인들은 여전히 시장을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에 사로잡혀 인위적인 도식 속에 가두려 한다.
특히 학문적 성취가 높고 과거의 성공 경험이 많아질수록 자신의 논리 체계에 함몰되는 ‘휴브리스’(Hubris·오만)의 덫에 빠지기 쉽다. 이들에게 시장은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가 아니라, 자신이 세운 가설을 입증하기 위한 실험실에 가깝다.
부동산 시장에는 무주택자와 유주택자, 매수자와 매도자가 각기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채 공존한다. 어느 한쪽의 시각에만 경도돼 ‘당위’와 ‘전망’을 혼동하는 순간 눈앞의 팩트는 왜곡된다. 소외된 이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서민에 대한 애정은 인간적으로 존중받아야 할 미덕이다. 그러나 시장을 진단하는 분석가의 칼날은 그 어느 때보다 차갑고 서늘해야 한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대니얼 카너먼은 “인간은 자신이 눈먼 상태라는 사실 자체에 눈멀어 있다”고 말했다. 모든 것을 통제하고 예측할 수 있다는 오만은 시장 분석가가 생의 마지막까지 경계해야 할 가장 깊은 함정이다.
최근의 여러가지 학술 연구는 지적 겸손의 필요성을 엄중하게 일깨운다. 특정 개인의 독자적 판단보다 집단의 예측 적중률이 평균 10~25%포인트가량 더 높다는 계량 연구 결과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고도화된 지식과 실시간 정보로 무장한 대중, 이른바 ‘개미군단’의 집단적 판단이 때로는 상아탑 속 석학 한 명의 예언보다 훨씬 정확하다. 개별 지능의 총합이 서로의 편향을 상쇄하고, 발생한 오류를 시장 내부에서 실시간으로 교정하기 때문이다.
물론 집단지성이 언제나 무오류일 수는 없다. 그러나 정보의 비대칭성이 사라진 지금, 대중의 집단적 선택이 석학의 독단보다 정답에 가까울 확률은 과거보다 훨씬 높아졌으며, 앞으로도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전문가 개인이 과거의 성공에 갇혀 고착된 자기 도식(Self-schema)에 머물러 있을 때, 시장의 집단지성은 끊임없이 유입되는 새로운 정보를 흡수하며 유연하게 진화한다. 특정 인물의 단정적인 전망보다 시장 전체가 만들어 내는 확률적 신호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결국 부동산 시장의 본질적 불확실성을 인정하는 것이 진정한 실력의 플래토(Plateau·정점)에 도달하는 출발점이다. 세상에 100% 확실한 미래는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경제 전망은 어디까지나 확률과 가능성의 영역 위에 세워진 가설일 뿐이다. 우리는 늘 ‘내가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인지적 유연성을 길러야 한다.
올바른 시각을 가진 분석가라면 어느 한쪽의 이념이나 이해 관계에 치우치지 않았는지 끊임없이 점검해야 한다. 대중의 환호나 비난에 흔들리며 당위론적 해석에 함몰되지 않았는지 스스로 경계해야 한다. 시장이라는 거대한 바다에서 표류하는 우리를 지켜주는 것은 화려한 웅변이나 선동적인 서사가 아니다. 편향되지 않은 냉철한 시선, 타인의 의견을 수용하는 열린 마음, 그리고 집단지성이 가진 진화의 힘에 대한 경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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