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크루제 무쇠 주물 냄비. [르크루제 홈페이지 캡처]
르크루제 무쇠 주물 냄비. [르크루제 홈페이지 캡처]

<31> 르크루제

1999년 10월 뉴욕 크리스티의 마릴린 먼로 유품 경매 행사장. 무쇠 냄비·프라이팬 세트가 2만5300달러(약 3000만원)에 낙찰된다. 마릴린 먼로가 누군가를 위해 직접 손에 쥐고 요리했을, 어쩌면 대통령을 위한 요리에 썼을 이 냄비는 바로 ‘엘리제 옐로’ 색의 르크루제(Le Creuset)였다.

르크루제는 요리 좀 한다고 알려진 먼로뿐 아니라 ‘요알못’(요리를 알지 못하는)도 홀리는 고운 색감의 무쇠 냄비로 유명한 브랜드다. 101세의 이 프랑스 냄비 브랜드는 ‘냄비 = 회색’이란 공식을 깨고 주황, 파랑, 노랑 등 알록달록한 ‘컬러풀 냄비’ 시대를 열었다는 점에서 혁신적이다.

1925년 벨기에 출신 주조 전문가, 에나멜링 전문가가 세운 프랑스 북부 프레노아르그랑 주물 공장에서 출발한 이 브랜드는 그 이름에서부터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있다. ‘유일한’을 의미하는 정관사 ‘르’(Le)와 고온으로 녹인 무쇠를 담는 도가니를 뜻하는 ‘크루제’(Creuset)를 결합한 것. 무쇠 재질을 갖고 장인이 수작업을 통해 냄비를 만든다는 스토리를 담은 브랜드다. 브랜드의 상징색도 녹은 무쇠의 색깔인 주황색이다.

르크루제는 고집스럽다. 프랑스 전통 주물 냄비 제작 기법을 고수하고 있다. 1500도가 넘는 용광로에 원재료를 넣고 녹인 후, 녹인 쇳물을 모래 주형에 부어 냄비 모양으로 성형을 한다. 모양대로 굳으면 모래 틀을 깨고 제품을 꺼낸다. 이를 30년 이상 숙련된 장인이 연마·코팅한다.

고운 빛은 꼼꼼한 수작업에서 왔다. 냄비 표면을 연마한 뒤 이뤄지는 3단계 에나멜 코팅이 비법이다. 여러 단계에 걸쳐 스프레이건으로 색을 입히는데, 이 때 장인의 컬러 그라데이션으로 입체감이 더해진다. 제품 검수엔 타협이 없다. 15단계의 검수 과정에서 흠이 발견되면 그대로 ‘용광로행’이다.

기술력으로 무장한 르크루제도 약점이 있었다. 공들여 만든 제품들을 영업으로 연결하는 데 능란하지 못했다. 창업자의 4대손이 경영하던 1987년, 오랜 위기 끝에 미국계 생활용품 기업인 프레스티지 그룹의 최고경영자(CEO)였던 폴 반 주이담 회장에게 인수된다. 르크루제의 가치를 알아 본 그는 프레스티지가 르크루제 인수에 실패하자, 스스로 사임한 후 개인 자격으로 인수했다. 그는 현재 오너 회장으로 르크루제를 이끌고 있다.

인수 직후 반 주이담 회장은 당시 대형마트에서 판매되던 르크루제를 백화점 판매 제품으로 재포지셔닝했고 해외지사 확대와 공장 현대화 등을 추진했다. 2006년엔 한국 시장에도 상륙, 선조의 가마솥밥을 연상케하는 ‘고메밥솥’을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시켰다.

김수연 기자 newsnew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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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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