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기반 자체 관리체계로 전환…기존 STR 감시 고도화
법인 투자 허용 땐 고객확인·준법 인력 부담 확대
금융당국이 1000만원 이상 가상자산 이전거래를 일률적으로 의심거래보고(STR) 대상으로 삼으려던 방침에서 한발 물러섰다. 대규모 보고 부담은 줄어들 전망이지만 위험거래를 직접 선별·관리해야 하는 책임은 각 거래소에 남으면서 자금세탁방지(AML) 내부통제 역량이 시험대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향후 법인 가상자산 투자까지 허용되면 대규모 거래에 대한 고객확인과 자금 출처 검증 업무도 늘어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7일 금융당국과 가상자산업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정보분석원(FIU)은 최근 국내 가상자산거래소 대표들과 만나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 시행령·감독규정 개정안에 대한 업계 의견을 수렴했다.
지난 3월 입법예고된 개정안에는 국내 가상자산사업자가 해외 사업자나 개인지갑과 가상자산 이전거래를 할 경우 위험도와 관계없이 1000만원 이상 거래를 의심거래로 보고해 FIU에 의무적으로 제출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금융당국은 현금과 가상자산 이전거래 사이의 규제 공백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현금은 1000만원 이상 거래할 경우 고액현금거래보고제도(CTR)를 통해 FIU에 보고되지만, 같은 규모의 자금이 가상자산으로 이전되면 당국이 자금 흐름을 파악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업계는 단순한 금액 기준만으로 모든 고액 이전거래를 의심거래로 분류하면 정상 거래까지 대거 보고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며 반발해왔다. 보고를 접수·분석해야 하는 당국의 업무 부담도 급증해 실질적인 자금세탁 탐지 효율이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이에 FIU는 의견 수렴을 거쳐 사업자별 위험기반접근(RBA)에 따라 자체 관리체계를 운영하도록 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거래소들은 변경된 운영 방식에 따라 자금세탁 위험을 식별·평가·관리할 수 있는 내부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일괄적인 STR 제출 부담은 줄어들지만 어떤 거래가 의심스러운지 판단하고 고위험 거래를 걸러낼 책임은 각 사업자에 남는 구조다. 별도의 대규모 전산 시스템을 새로 구축하기보다는 기존 AML 감시 체계를 고도화하고 내부 업무 절차를 세분화하는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가상자산업계 관계자는 "기존 STR 감시 체계를 조금 더 강화해 대응할 수 있을 것 같다"며 "고위험 거래에 대한 식별과 모니터링 기능을 정교화하는 정도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새로운 전산 시스템을 만드는 것보다 기존 내부 기준과 업무 절차를 강화하는 방향에 가깝다"며 "세부 정책을 마련한 뒤 담당자들이 이를 일관되게 적용할 수 있도록 실무 교육을 진행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율성이 확대된 만큼 사후 검사 과정에서 거래소가 판단 근거의 적정성을 입증해야 하는 부담도 커질 수 있다. 같은 유형의 이전거래라도 사업자별 내부 기준에 따라 고위험 여부나 고객에게 요구하는 자료가 달라질 가능성도 있다.
강화된 고객확인 의무도 원안보다 완화될 전망이다. 당초 개정안은 고위험 의심거래로 분류된 경우 자금 출처와 거래 목적을 추가로 확인하도록 했지만, 의심거래 중에서도 사업자의 위험도가 특히 높다고 판단한 경우에만 강화된 고객확인을 적용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구체적인 적용 기준은 향후 제시될 행정 가이드에 따라 결정될 전망이다.
이번 제도 개편이 향후 법인 가상자산 투자 허용과 맞물려 거래소의 내부통제 부담을 높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법인 투자가 허용되면 개인보다 거래 규모가 큰 법인 자금이 시장에 유입되는 만큼 거래소의 고객확인과 자금세탁 위험 평가 업무도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 법인의 거래 목적과 자금 원천, 실소유자 등을 확인해야 하는 사례가 늘면서 개별 거래에 대한 검토 절차도 복잡해질 수 있다.
거래소 관계자는 "법인은 자금 운용 목적과 관련 서류가 갖춰진 상태에서 거래가 이뤄져야 하기 때문에 거래소도 별도의 검토 절차를 운영해야 한다"며 "거래소뿐 아니라 법인 투자자 역시 관련 서류를 준비하고 대응할 전담 인력이 필요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김지영 기자 jy1008@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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