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수출 호황에도 한국 경제의 성장 엔진이 갈수록 힘을 잃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내년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사상 처음으로 1.5% 아래로 떨어질 것이라 전망했다. 반도체 경기 회복이 수출을 떠받치고 있지만 저출산·고령화와 생산성 둔화 등 구조적 문제를 상쇄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7일 OECD 최신 데이터에 따르면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올해 1.66%에서 내년 1.52%로 하락할 것으로 추정됐다. 특히 내년 4분기에는 1.46%까지 떨어지며 가파른 하락세를 보일 전망이다. OECD가 한국의 잠재성장률을 1.5% 미만으로 관측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잠재성장률은 인플레이션을 유발하지 않고 달성할 수 있는 최대 성장치다. 한 국가의 실질적인 경제 역량을 의미한다. 한국은 2012년(3.62%) 이후 하락세를 이어오며 2016년 3%선, 지난해 2%선이 차례로 무너졌다. 불과 6개월 전(지난해 12월) OECD가 내놓은 전망치(올해 1.71%·내년 1.57%)와 비교하면 각각 0.05%포인트(p)씩 하향 조정된 수치다. 내년 4분기 역시 기존 예상치(1.52%)보다 0.06%p 내렸다.

이러한 잠재성장률의 하락은 최근의 거시경제 지표 개선 흐름과 극명히 대비된다. 앞서 OECD는 반도체 등 정보기술(IT) 품목의 수출 호조를 반영해 한국의 올해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1.7%에서 2.6%로 대폭 상향 조정했다. 반도체 등 IT 품목을 중심으로 한 수출 호조에 올해 1분기 실질 GDP 성장률 속보치가 1.7%에 달한 점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 호황이 당장의 성장률은 끌어올리고 있지만, 한국 경제의 구조적인 한계까지 해소한 상황은 아니라는 게 OECD 데이터가 주는 시사점이다.

전문가들은 반도체 경기 회복이 경제 전반의 투자 확대와 생산성 증대로 이어져야만 잠재성장률 반등을 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OECD 등이 제시하는 잠재성장률이 과거 추세를 중시하는 모형에 따라 기계적으로 추정한 것이어서 큰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는 반론도 제기한다. 하지만 앞으로 반도체 경기 개선을 경제 전반의 투자 확대와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도록 해야 잠재성장률 반등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데는 이견을 찾기 어려워 보인다.

박정우 노무라증권 이코노미스트는 "반도체가 전체 설비투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0~35% 수준이다. 이것만으로 나머지 부문의 투자 정체를 상쇄하기는 역부족"이라며 "생산성 향상을 위한 구조조정과 규제 개혁이 절실하다"고 진단했다.

최지욱 한국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인공지능(AI) 관련 투자가 자본 공급 여력을 높여 잠재성장률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AI 발전에 따른 초과 이익이 일회성 분배에 그치지 않고 재투자로 이어져 고용 증가와 노동 효율성을 높이는 정책이 수반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주형연 기자 jhy@dt.co.kr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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