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전협상, 핵·제재·해협 개방 놓고 출구 못 찾아
"어느 한 문제도 독립적으로 해결되기 어려운 구조"
"에너지 가격 상승, 글로벌 인플레이션 자극할 것"
군사력으론 해결 어려워…결국 정치적 결단에 달려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 핵시설과 군사 인프라를 겨냥해 대규모 공습을 개시하며 시작된 중동전쟁이 7일로 100일째를 맞았지만 종전의 출구는 여전히 보이지 않고 있다.
전면전 직전까지 치달았던 군사 충돌은 휴전 국면에 들어섰으나, 핵 프로그램과 경제제재, 호르무즈 해협, 레바논 정세가 복잡하게 얽히면서 협상은 장기 교착상태에 빠져 있다.
이번 전쟁은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의 우라늄 농축 능력과 핵무기 개발 가능성을 국가안보에 대한 직접적 위협으로 규정하면서 시작됐다. 미국은 '장대한 분노', 이스라엘은 '사자의 포효'라는 이름 아래 대이란 군사작전을 전개했다. 개전 초기 압도적인 공중전력과 정밀타격 능력을 앞세워 이란의 핵·군사시설에 심각한 피해를 입혔다. 이 과정에서 이란 지도부와 군 수뇌부 수십명이 제거되고 전세는 미국과 이스라엘에 유리하게 기울어지는 듯했다.
그러나 이란은 드론과 미사일을 활용한 비대칭 전력으로 맞서며 전쟁 양상을 바꿔놓았다. 특히 세계 원유 해상 수송량의 20% 이상이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면서 국제사회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국제유가는 단기간에 급등했고, 글로벌 금융시장 역시 극심한 변동성을 겪었다.
미국 경제전문지 CNBC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분석 기사에서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더 장기화할 경우 세계 원유 공급망 전체에 충격을 가할 수 있으며, 에너지 가격 상승이 글로벌 인플레이션을 다시 자극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미국 내에서도 휘발유 가격의 추가 상승 우려가 커지면서 백악관의 정치적 부담 역시 확대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현재 미국은 막대한 비축유를 풀면서 근근이 국내 소비분을 공급하고 일부를 수출하면서 유가 폭등을 막고 있지만, 다음 달이면 비축유마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전쟁이 지속되면서 미국은 군사적 우위를 유지하면서도 경제적 부담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이란 역시 주요 에너지 시설 피해와 수출 차질, 금융제재로 심각한 압박을 받고 있었지만,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영향력 행사만큼은 협상장에서 강력한 카드로 활용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양측은 전면전으로의 확산 가능성이 최고조에 달했던 지난 4월 초 극적으로 휴전에 합의했다. 당시 미국은 이란이 해협을 계속 봉쇄할 경우 발전소와 석유시설에 대한 추가 타격은 물론 지상군 투입까지 검토하고 있다는 경고를 보냈고, 이란 역시 확전이 체제 안정성을 위협할 수 있다는 판단 아래 일단 휴전을 수용했다.
하지만 휴전이 곧 평화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이후 파키스탄에서 열린 첫 대면 협상은 별다른 성과 없이 종료됐고, 미국은 이란 에너지 수출을 차단하기 위한 해상 봉쇄와 금융 압박을 강화하며 협상력을 높이는 전략을 선택했다.
반면 이란은 경제제재와 봉쇄 해제가 선행되지 않는 한 핵 프로그램 축소나 고농축 우라늄 처분에 응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미국의 요구는 비교적 명확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종전 협상 타결이 가까워졌다고 수시로 말해왔으나 실제로는 교착 상태다. 미국은 이란이 핵무기를 보유하지 못하도록 고농축 우라늄 재고를 폐기하거나 국제사회에 이관하고, 장기간 농축 활동을 중단하겠다는 확실한 보장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과 국제사회의 검증 체계 수용도 포함된다.
반면 이란은 핵 문제를 단계적으로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추가 공격 가능성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먼저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는 것은 사실상 일방적 무장해제와 다르지 않다는 논리다. 이란은 또한 자국에 대한 경제제재 해제와 동결자금 반환이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레바논 문제까지 더해지면서 협상은 더욱 복잡해졌다. 이스라엘은 국경 지역 안보 확보를 이유로 친이란 무장세력인 헤즈볼라에 대한 군사작전을 이어가고 있으며, 이란은 이를 휴전 정신에 반하는 행동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최근 레바논 정부와 이스라엘 간 새로운 휴전 합의가 체결됐지만, 헤즈볼라와 이란 측은 여전히 불신을 거두지 않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최근 보도에서 "중동전쟁의 군사적 충돌은 멈췄지만 외교전은 오히려 더 복잡해졌다"고 평가했다. 신문은 핵 협상과 레바논 문제, 해상안보, 경제제재가 하나의 패키지로 얽히면서 어느 한 문제도 독립적으로 해결되기 어려운 구조가 형성됐다고 분석했다. 워싱턴포스트 역시 양측 모두 전쟁에서 승리를 주장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누구도 전략적 목표를 완전히 달성하지 못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최근에는 미국과 이란이 잠정 합의 내용을 담은 양해각서(MOU) 초안을 교환했다는 관측도 나왔지만 최종 서명까지는 이어지지 못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를 주재하며 협상 결과를 검토했으나, 기존 핵합의보다 강력한 조건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최종 승인을 보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 내부 사정 역시 변수다. 최고지도부 교체 이후 강경파와 실용파 간 이견이 지속되고 있으며, 경제난 심화와 체제 안정 문제를 둘러싼 내부 논쟁도 이어지고 있다.
미국 정보당국은 이란 지도부 내부의 의사결정 과정이 복잡해지면서 협상 속도 역시 늦어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
현재 양측 모두 산발적인 군사 충돌은 이어가고 있지만 휴전을 전면 파기할 의도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유가 불안과 전쟁 피로감, 국내 정치 부담을 의식하고 있으며, 이란 역시 경제위기와 사회 불안 확대를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결국 전쟁 100일을 넘긴 지금 중동의 향방은 군사력이 아니라 정치적 결단에 달려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핵 문제와 제재, 레바논 정세, 호르무즈 해협이라는 복잡한 매듭을 풀지 못한다면 휴전은 장기 교착으로 굳어질 가능성이 크다. 세계 경제가 기다리는 호르무즈 해협의 완전한 재개방 역시 그때까지는 불확실성 속에 머물 수밖에 없어 보인다.
이규화 대기자 david@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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