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선택을 한 이웃 향한 악마화 멈춰야

‘선거의 역설’ 품어내는 조화의 정치 절실

제미나이가 그린 일러스트.
제미나이가 그린 일러스트.

음악에서 여럿이 노래를 부르는 방식에는 크게 '제창(齊唱)'과 '합창(合唱)'이 있다. 제창은 모든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은 선율을 부르는 것이다. 단 한 명이라도 다른 음을 내면 틀린 것이 되고 전체의 통일성은 깨진다. 반면 합창은 소프라노와 알토, 테너와 베이스가 각기 다른 음정을 내며 거대한 화음(和音)을 빚어낸다. 합창에서 옆 사람과 다른 소리를 내는 것은 곡을 파괴하는 행위가 아니라, 곡을 더 깊고 풍성하게 만드는 필수 조건이다.

공자(孔子)가 군자의 덕목으로 꼽은 '화이부동(和而不同·다름을 인정하며 조화를 이룸)'은 곧 합창의 세계다. 반면 오직 하나의 목소리만 낼 것을 강요하는 제창은 소인의 '동이불화(同而不和·같음을 강요하지만 화합하지 못함)'와 닮았다. 민주주의라는 무대는 마땅히 제창이 아닌 합창이어야 한다.

그러나 선거가 휩쓸고 지나간 우리 사회는 동이불화의 늪에 빠져 있다. 가장 뼈아픈 대목은 정치인들의 권력 다툼을 넘어, 평범한 유권자들이 서로를 대하는 삭막한 시선이다. 선거는 공동체가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는 선택의 절차이지 선악을 심판하는 종교재판이 아니다. 진보 유권자든 보수 유권자든, 누구나 각자가 딛고 선 삶의 궤적과 절박한 현실 속에서 나름의 최선 혹은 차악을 선택한 동등한 시민이다. 누군가에게는 분배와 평등이, 누군가에게는 성장과 안정이 더 절박한 생존의 가치일 수 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우리는 상대편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는 이유만으로 이웃을 향해 '수준 이하의 저질'이라고 조롱하거나 '악마를 추종하는 무리'로 매도하는 일에 익숙해졌다. 투표용지에 찍힌 도장 하나로 타인의 인격과 지적 수준 전체를 멸시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허무는 폭력이다. 상대의 등 뒤에 놓인 삶의 배경을 존중하는 태도를 회복하지 않는 한, 선거는 축제가 아니라 시민들 간의 끔찍한 심리적 내전(內戰)으로 전락하고 만다.

이 무서운 배척의 논리는 비단 진영의 밖을 향해서만 뻗어나가지 않았다. 이번 선거에서는 유독 같은 진영 안에서도 핏빛 증오가 난무했다. '원팀'이라는 명분을 앞세웠지만, 실상은 아주 작은 이견(異見)이나 합리적 비판조차 허용하지 않는 맹목이었다. 조금이라도 사안을 다르게 해석하면 가차 없이 '배신자'라는 낙인을 찍어 광장 한가운데서 조리돌림을 했다. 겉으로는 결속을 자랑하면서도 속으로는 다양성을 처단하고 순혈주의만 강요하는 폭력적 팬덤의 지배. 목적지가 같아도 경로가 다르면 적으로 간주하는 이것이야말로, 겉만 같을 뿐 속은 지독하게 불화하는 동이불화의 민낯이다.

선거의 룰은 가혹하고 역설적이다. 투표함을 열면 승자를 향한 환호 못지않게 절반에 가까운 유권자들의 매서운 견제와 다른 선택이 쏟아져 나온다. 그러나 권력의 단상에 오르는 것은 오직 단 한 사람뿐이다. 반대의 목소리가 아무리 굳건한 다수였어도 한 명의 승자가 권한을 쥐게 되는 제도의 맹점 속에서, 승자는 자칫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절반의 존재를 투명인간 취급하려는 오만에 빠지기 쉽다.

하지만 나를 지지하지 않은 국민도 똑같은 세금을 내고 이 땅을 살아가는 동등한 주권자다. 선거에 이겼다고 해서 사회 전체를 자신의 색깔로만 칠할 권리까지 위임받은 것은 아니다. 견제와 이견의 목소리를 시정의 한 축으로 껴안으며 이 무거운 '선거의 역설'을 감당해 낼 때, 승자는 비로소 진영의 점령군을 넘어 공동체의 대리자가 될 수 있다.

민주주의는 나와 똑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찾아내 무균실을 만드는 제도가 아니다. 끝내 완벽히 같아질 수 없는 사람들이 서로의 다름을 견디며 기꺼이 한 테두리 안에서 폭력 없이 공존하기로 한 아슬아슬하고도 위대한 타협이다. 단일한 제창만을 강요하는 부족주의적 폭력을 멈추어야 한다. 나에게 환호하지 않는 절반의 타자를 그리고 나와 다른 선택을 한 이웃을 온전한 동료 시민으로 인정할 때 비로소 갈라진 사회는 다시 합창을 시작할 수 있다. 화이부동은 공자의 낡은 훈계가 아닌 이 사회가 붕괴하지 않기 위해 당장 붙들어야 할 가장 절박한 생존 기술이다.

김윤정 기자 kking152@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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