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모론과 극우 표적 된 사전투표, 23.51%로 역대 지선 최고치

비상계엄·채용 비리 등 위기 넘고 6·3 지선까지 위원장 유임

계엄 세력 표적에 “헌정 질서 위협” 일갈… 투명성 제고 총력

“사전투표 논란 계속땐 본투표 이틀로”… 누적된 피로감 토로

대통령 투표지 노출 등 불씨 여전… “유권자 손끝서 선거 완성”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이 지난달 20일 경기도 중앙선관위 과천청사에서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관련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이 지난달 20일 경기도 중앙선관위 과천청사에서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관련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장

“선거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 불필요한 오해나 의혹이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제9회 6·3 전국동시지방선거 공식 선거운동을 앞두고 내놓은 대국민 담화의 일성이다. 그의 다짐은 지난 29~30일 이틀간 치러진 사전투표 결과로 뚜렷하게 나타났다. 6·3 지방선거 사전투표율은 23.51%로 역대 지방선거 최고치를 기록했다. 직전 2022년 지방선거(20.62%)를 훌쩍 넘어선 수치다.

이번 23.51%라는 기록은 단순한 투표율 상승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번 선거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당시 계엄군의 선관위 병력 투입 명분으로 쓰인 ‘부정선거 의혹’ 제기 이후 처음 치러지는 전국 단위 선거다. 그동안 음모론이 가장 집요하게 겨냥했던 게 바로 사전투표 제도였다. 그러나 유권자들 대부분은 선거관리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투표장으로 향했다. 부정선거 음모론이 무색해졌다.

이 기록의 한복판에 노 위원장이 있다. 독립유공자 노차갑 선생의 손자이자 한양대 출신 최초의 남성 대법관인 그는 법원 내에서 중도 성향의 합리적 법관으로 평가받아왔다. 올해 2월 6년간의 대법관 임기를 마쳤으나, 6·3 지방선거를 코앞에 두고 선관위 수장을 교체할 경우 불거질 관리 공백과 정치적 쟁점화를 우려해 위원장에 유임됐다. 이번 선거는 그가 치르는 마지막 전국 단위 선거다.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이 28일 서울 서대문구 서부교육지원청에 마련된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사전투표소를 찾아 준비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연합뉴스]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이 28일 서울 서대문구 서부교육지원청에 마련된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사전투표소를 찾아 준비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2년 5월 취임 이후 그의 임기는 험난한 파고의 연속이었다. 직전 대선에서 불거진 코로나19 확진자 ‘소쿠리 투표’ 부실 관리 논란 직후 등판한 그는 “대선 사전투표 부실 관리에서 비롯된 위기 상황을 절체절명의 순간으로 인식했다”며 신뢰 회복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그러나 선관위 고위직 자녀 특혜 채용 의혹이 터지며 조직의 도덕성이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당시 노 위원장은 “열 번을 얘기해도 할 말이 없는 잘못”이라며 “국민 여러분께 큰 실망과 걱정을 끼쳐드렸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후 경력 채용 전면 폐지와 외부 개방형 감사관 도입 등 강도 높은 쇄신을 단행했다.

가장 큰 고비는 단연 12·3 비상계엄 사태였다. 계엄군은 선관위 청사에 진입했고, 그 명분이 부정선거 의혹이었다. 노 위원장은 즉각 “계엄군의 선관위 점거는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중대한 위헌·불법 사안”이라고 비판하며 헌정 질서 수호의 전면에 섰다. 특히 계엄 관련 수사 과정에서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 선관위 관계자 체포 구상을 언급하며 “노태악은 내가 처리한다”고 발언한 정황까지 드러나기도 했다. 선관위원장 개인이 계엄 세력과 부정선거 서사의 직접적인 표적이 되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러한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선관위는 이번 선거에서 ‘투명성 강화’에 조직의 역량을 집중했다. 노 위원장은 “법과 원칙에 따라 투명하고 정확하게 관리하겠다”는 기조 아래, 일반 국민이 참여하는 공정선거참관단을 전국 17개 시도로 확대 운영했다. 또한 행낭식 관내사전투표함 받침대를 투명 재질로 교체하고, 사전투표함 보관 장소의 CCTV 영상을 24시간 상시 열람할 수 있도록 조치하는 등 의혹이 싹틀 수 있는 절차적 사각지대를 대폭 줄였다.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이 28일 서울 서대문구 서부교육지원청에 마련된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사전투표소를 찾아 새로 변경된 관내사전투표함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이 28일 서울 서대문구 서부교육지원청에 마련된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사전투표소를 찾아 새로 변경된 관내사전투표함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노 위원장의 4년은 선거 관리 기관이 직면한 불신의 시대를 관통한다. 소쿠리 투표 논란부터 채용 비리 의혹, 비상계엄과 부정선거 음모론, 투표지 노출 논란까지 숱한 고비를 넘겨왔다. 그런 측면에서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사전투표율은 유권자가 그에게 안겨준 선물이다.

다만 23.51%라는 사전투표율 이면에는 부정적 신호도 여전히 꿈틀거린다. 사전투표 직후 이재명 대통령의 투표지 노출 논란이 불거졌고, 한 보수 성향 시민단체가 “선관위가 비밀 보장 원칙 위배를 별다른 조치 없이 방치했다”며 노 위원장 등을 직권남용 및 직무유기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현장의 변수 하나가 곧바로 거센 정치 공방과 사법리스크로 번지는 현실이다.

노 위원장은 이와 관련해 “투·개표의 전 과정을 투명하고 정확하게 관리할 것”이라면서 “절치부심의 마음으로 유권자 여러분이 안심하고 투표할 수 있는 현장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그는 “이번 선거가 우리 사회의 갈등과 반목을 넘어 모든 국민을 화합으로 이끄는 선거가 될 수 있도록 선관위는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선관위 고위관계자는 디지털타임스와의 통화에서 “이제 남은 과제는 본투표와 개표, 그리고 선거 결과에 대한 사회적 수용이다”라면서 “선거는 표를 행사하는 절차로 끝나지 않는다. 패자가 결과를 받아들이고, 다수가 절차를 신뢰할 때 완성된다”고 했다.

노 위원장은 임기 마지막은 선관위의 신뢰 회복과 함께 할 것으로 보인다.

김윤정 기자 kking152@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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