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를 바꾼 집념, 대통령 지시 넘어 ‘40만㏊ 간척’ 꿈꾸다

청와대 시절 눈뜬 국토개발, 발로 뛰며 완성한 새만금의 뼈대

유통 근대화 이끈 가락시장 설계와 억울했던 ‘미국 쌀’ 시련

치밀하고 뜨거웠던 공직자의 삶, 후배들 가슴에 이정표 남기다

이병기 전 농림수산부 차관.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병기 전 농림수산부 차관. 연합뉴스 자료사진.

박정희 대통령은 그저 “식량을 더 늘릴 방법을 찾아오라”고 지시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당시 농수산부의 한 젊은 관료는 단순히 논밭을 일구는 수준을 넘어 대한민국의 지도를 바꿀 거대한 계획을 품고 있었다. 서산지구와 새만금 등 후대 한국 간척사의 뼈대가 된 ‘서남해안 간척 마스터플랜’을 수립한 이병기 전 농림수산부 차관이 30일 오전 향년 87세로 세상을 떠났다.

1939년 부산에서 태어난 고인은 부산고와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1961년 고시행정과에 합격하며 공직에 발을 들였다. 처음에는 경제기획원에서 일했으나, 1968년부터 5년간 대통령 비서실에서 근무하며 국토개발에 눈을 떴다. 고인의 농림부 후배인 조일호 전 차관은 “고인이 청와대에 있을 때 경주 보문관광단지 개발에 관여했다”며 “그때부터 국토개발에 관심이 많고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고 회상했다.

그의 집념이 본격적으로 빛을 발한 것은 1975년 농수산부 농지국장으로 부임하면서부터다. 자리를 맡자마자 고인은 농지국과 농업진흥공사(현 한국농어촌공사)의 기술 인력을 총동원해 전국 갯벌을 이 잡듯 뒤지며 답사하고 측량했다. 그 집요한 노력 끝에 “간척 농지로 개발할 수 있는 면적이 총 40만 ㏊에 달한다”는 구체적인 결과가 나왔다.

이듬해인 1976년 1월, 농수산부는 새해 부처 순시에 나선 박정희 대통령에게 이 장기적인 식량 자급 기반 조성 계획을 보고했다. 조 전 차관은 “대통령은 식량 증산 지시만 내렸을 뿐, 서남해안 간척 사업을 벌이자는 생각은 전적으로 고인에게서 나온 것”이라며 “이 계획이 훗날 새만금 등으로 이어지기 전에도 강화도와 완도 등 섬 지역의 간척 사업을 여러 곳에서 추진했다”고 전했다. 정부는 이 보고를 바탕으로 1978년 서남해안 간척 사업 계획을 공식 확정했다. 고인의 시선은 땅에만 머물지 않았다. 1978년 농업경제국장 시절에는 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비롯한 전국 농수산물시장 설립 계획을 세우며 유통 구조의 근대화까지 이끌었다.

공직 생활이 탄탄대로만은 아니었다. 1980년대 초 식량차관보와 제2차관보를 지낼 무렵 야당으로부터 “미국 쌀을 필요 이상으로 과다하게 들여왔다”는 거센 공세를 받았다. 이 일로 고인은 농촌진흥청 차장, 국립농산물검사소장 등으로 자리를 옮기며 한동안 변방을 맴돌아야 했다. 이에 대해 조 전 차관은 “당시 쌀 도입량은 총리가 결정한 사안이었는데 고인이 억울하게 덤터기를 썼다”며 안타까워했다.

시련을 겪은 후 고인은 1988년 농림수산부 차관으로 복귀했다. 공직을 떠난 후에는 1990년부터 1996년까지 남해화학 사장을 역임했다. 후배들이 기억하는 고인은 “굉장히 조직적이고 치밀하며, 업무에 대한 의욕이 대단했던 공직자”였다.

유족으로는 부인 윤혜자씨와 이원국(부동산개발)·이원철(LG전자)·이윤행씨 등 2남 1녀가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3호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6월 1일 오전 6시 30분이다. 장지는 용인천주교공원묘원이다.

세종=강승구 기자(kang@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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