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흠 前 국회입법조사처장

며칠 전 오랜만에 고향에 들렀다. 여기저기 지방선거 운동이 한창이었다. 특정 정당의 지배력이 강한 곳이어서 더 그랬는지, 패권 정당 후보 진영의 위세 속에 나머지 후보들은 위축돼 보였다. 읍내 한복판을 차지한 채 무한 데시벨을 뿜어대는 패권 세력에 밀려 외진 곳에 몇 명씩 모여 있는 소수 세력, 나에겐 쓸쓸한 선거운동 풍경이었다.

풀뿌리 민주주의, 한때 지방자치를 말할 때 단골로 등장하는 용어였다. 최근에는 오히려 생소한 용어처럼 돼버렸다. 민주화와 더불어 1990년대 지방자치가 재개되면서 그 의미를 강조하는 아주 유용한 개념이었다. 이제 지방자치의 역사와 더불어 자연스럽게 퇴조한 경향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앙의 정당정치가 지배하는 우리의 지방선거에서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구호가 생뚱맞을 수밖에 없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우리가 보고 있다시피, 여당 민주당 후보들이 가장 강조하는 구호는 이재명 정부의 성공이다. 야당 국민의힘은 공소 취소 특검법 저지와 이재명 독재 심판을 내걸었다. 여당은 내란세력 완전 청산으로 맞받아쳤다. 대통령 선거나 국회의원 선거 캠페인 같다. 우리의 지방정치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고, 동시에 중앙정치가 지배하는 지방정치의 실종을 말해주는 것이다. 지방선거도 중앙의 정당 싸움이며, 그 정당의 위세에 업혀가는 선거다.

국제적으로도 중앙정치가 지방으로 확산되는 경로로 지방의 민주주의가 발전해 온 경우들이 적지 않다. 물론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가 국가로 통합되는 경우들이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유럽의 국가들을 보면, 중앙에는 근대적 민주주의가 발전해 가고 있었지만, 지방은 전통적 봉건체제가 유지되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의 지방자치도 중앙정치의 민주화와 더불어 재개됐다. 특히 한국사회는 사회적 에너지가 중앙권력을 향해 소용돌이치는 대표적인 나라로 거론될 정도다. 그만큼 지방정치가 중앙정치를 향하고 중앙정치가 지방을 지배한다. 이로 인해 최근에는 중앙정치의 폐해가 지방에 그대로 이전되면서 오히려 지방정치의 발전을 왜곡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경제민주화를 말하고 골목상권을 말한다. 경제민주화는 대기업의 독과점을 해소하고 중소기업의 활동 영역을 보호하는 조치까지를 그 전략으로 제시한다. 그러나 대기업의 독과점 문제는 지적하면서 자신들의 정치적 독과점은 오히려 누린다. 골목상권 보호라며 대형 업체의 의무휴업제까지 실시하면서 자신들의 독과점 정당 특권은 보호한다.

더구나 이 독과점 세력들이 아주 극단화돼 있다. 극단화한 진영정치다. 생활공동체로서의 지방정치 영역에 중앙의 진영정치가 침투 확산되어 지방정치를 퇴폐시키고 있다. 이번 지방선거 역시 중앙의 독과점 정당정치가 그대로 주도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그에 따른 한계와 반발도 노정되고 있다.

정당 독과점 체제는 영호남의 지역별 1당 체제와 동전의 양면이다. 영남 에서는 그동안 이 지역을 주도했던 국민의힘이 국민 신망을 잃은 가운데 독점 구조가 흔들리고 있다. 실제 최종 투표 결과로 과연 얼마나 기존의 독점 구조가 재편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호남 지역은 영남보다 1당의 독점적 지배력이 더 강하다. 더구나 이 지역을 주도하는 민주당이 집권여당으로서 최근 지지도도 좋은 편이어서 상대 정당이 도전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대신, 후보 공천 논란에 따른 부작용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경쟁없는 독점체제가 낳게 되는 오만과 비민주성 문제다. 전북에서는 무소속 도지사 후보가 독점 정당인 민주당 후보를 앞서가는 기세를 보이고 있다. 기초 단위의 단체장이나 지방의원들에서 무소속이나 소수 정당 세력의 성과가 어떻게 나올지 지켜볼 대목이다.

지방선거와 동시에 치르고 있는 14군데의 재보궐선거, 그 중에서 특히 부산 북갑은 양대 정당과 무소속 한동훈 후보가 복합적인 3자 경쟁구도를 만들고 있다. 그 결과에 따라 여야 구도, 그리고 보수 야당 재편에도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유권자들 또한 정치세력과 더불어 이런 정치 동학을 만들고 있다. ‘내란세력 완전 청산’ ‘공소취소 사법파괴 심판’ ‘양대 기득권 세력의 심판’ ‘진영을 넘어선 후보자 선택’, 어느 주장이 호소력이 있을까? 양대 기득권을 넘어선 선택이 중앙의 독과점 체제 해소와 지방정치 혁신의 정답처럼 보이기도 한다. 지역발전 전략과 대안 후보의 문제가 변수로 남아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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