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회화의 특징 중 하나는 ‘시서화’(詩書畫)다. ‘문학과 서예와 회화는 하나’라는 뜻이다. 중국인들에 시와 글씨와 그림은 하나였다. 대상을 보고 감흥이 일어 글로 쓰면 시가 되고, 붓을 들어 글씨로 쓰면 서예가 되며, 그림으로 그리면 화가 됐다.
중국 옛 그림들을 보면 그림의 여백에 시나 글이 써 있는 걸 볼 수 있다. 바로 ‘제화시’(題畫詩)라는 동양 고유의 예술 양식로, 시서화의 전통을 잘 말해준다. 그림의 여백에 시와 글을 써넣어 시와 그림이 하나의 화폭에서 조화를 이룬다. 제화시는 중국에서 시작해 한자문화권 전역으로 확산했으며, 시각 예술과 언어 예술이 결합된 종합 예술로 평가된다.
제화시는 그림(畫) 위에 뛰어난 글씨(書)로 문학적인 시(詩)를 적어 넣는 형태를 취한다. 그래서 시서화(詩書畫)를 모두 완벽하게 조화시킨 예술가를 ‘삼절’(三絕)이라 불렀다. 여기서 ‘절’(絶)은 ‘끊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여기서 끊겨 더 이상은 없다’는 뜻이다. 매우 빼어난 노래라는 의미의 ‘절창’(絶唱)의 ‘절’(絶)과 같은 의미다.
제화시는 그림으로 표현하기 부족한 깊은 뜻을 시로 편다. 그림이 가진 시각적 한계를 시의 문학적 상상력으로 채워 작품의 깊이를 더하는 것이다. 또한 동양화 특유의 여백 공간을 단순한 빈칸이 아닌, 시와 글씨가 들어앉는 유기적인 예술 공간으로 활용한다.
제화시의 전통은 멀리 당(唐) 나라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송 팔대가(唐宋 八大家)로 꼽히는 문장가이자 화가였던 왕유(王維)는 “시 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시가 있다”(詩中有畫 畫中有詩·시중유화 화중유시)라는 유명한 문구로 문인화(文人畵)의 기틀을 닦았다.
이어 송(宋) 나라때 문인 사대부 계층이 예술의 중심이 되면서 제화시가 본격적으로 정착했다. 특히 역시 당송 팔대가의 한 사람인 소동파(蘇東坡)를 비롯한 문인들이 시와 그림의 합일을 강조하며 대중화에 앞장 섰다.
제화시가 예술적 완성에 이른 것은 명(明)·청(淸) 시기로 사대부뿐만 아니라 궁중과 민간 전반에서 널리 애용됐으며, 기법과 형식이 더욱 정교해졌다.
그림에 쓰여지는 글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그림을 그리게 된 동기나 당시의 감정을 서술한 배경과 감흥, 그림의 가치에 대한 감상과 평론, 그림이 전달하고자 하는 정신적 가치나 철학을 담은 사의(寫意) 등이 그것이다.
제화시의 유형으론 ▲화외재시(畫外題詩) ▲화내제시(畫內題詩) ▲자제시(自題詩) ▲타제시(他題詩) 등으로 나뉜다. ‘화외재시’는 그림의 끝에 화가 자신의 이름 정도를 쓰는, 그림밖에 글을 쓰는 것이다. ‘화내제시’는 그림과 글이 한 화면에 동시에 나타난 것이다. ‘자제시’는 화가 자신이 읊은 것이며, ‘타제시’는 다른 사람이 그림을 보고 지은 것이다.
제화시 중 가장 널리 알려진 대표적인 작품으론 청나라 중기의 문인화가 정섭(鄭燮·호 판교)의 ‘묵죽도’(墨竹圖), 소동파(蘇東坡)의 ‘혜숭춘강만경’(惠崇春江晚景)와 ‘자제금산화상’(自題金山畫像) 등을 꼽을 수 있다.
청나라 건륭제 시절, 강남의 교통 요지로 상업 도시였던 강소성 양주(揚州)에는 기존의 틀을 깨고 독창적인 화풍을 선보인 8명의 개성파 화가들이 있었다. 바로 ‘양주팔괴’(揚州八怪)로 정섭은 그 중 한 명이다. 그는 대나무 그림의 대가이자 뛰어난 시인으로, 자신이 그린 대나무 그림 옆에 사대부의 꼿꼿한 지조와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은 시를 자주 남겼다.
‘묵죽도’(墨竹圖)는 그 정점에 서있는 작품이다. 묵죽도의 여백에는
咬定青山不放鬆 (교정청산불방송·청산을 꽉 물고 놓지 않으니)
立根原在破巖中 (입근원재파암중·뿌리는 본래 쪼개진 바위 속에 박혀 있네)
千磨萬擊還堅勁 (천마만격환견경·천 번 깎이고 만 번 부딪혀도 오히려 굳세고 단단하니)
任爾東西南北風 (임이동서남북풍·동서남북 어느 방향에서 바람이 불어와도 끄떡없어라)
라는 시가 적혀져 있다.
바위 틈새에 난 대나무의 묵 그림(墨竹)과 시가 결합돼 어떠한 시련과 외압(바람)에도 굴하지 않는 지조 높은 선비의 정신(사의, 寫意)을 완벽하게 시각화했다. ‘매란국죽’(梅蘭菊竹)은 동양 미술과 문학에서 가장 사랑받는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를 일컫는다. 고결한 선비의 인품을 닮았다 하여 ‘사군자’(四君子)라고도 부른다. 매란국죽은 각각 사계절(봄, 여름, 가을, 겨울)을 상징하며, 모진 환경을 이겨내는 선비의 지조와 절개를 뜻한다.
소동파(蘇東坡)의 ‘혜숭춘강만경’(惠崇春江晚景)은 북송 시대 대문호 소동파가 승려이자 화가였던 혜숭의 그림 ‘춘강만경’(봄 강가의 저녁 풍경)을 보고 그 여백에 지어 넣은 시다. 그림에는 담기지 않는 ‘온도’와 ‘맛’ 같은 감각을 시로 채워 넣은 제화시 중 최고 걸작으로 꼽힌다.
竹外桃花三兩枝 (죽외도화삼량지·대나무 밖 복사꽃 두세 가지 피었고)
春江水暖鴨先知 (춘강수난압선지·봄 강물 따스해진 걸 오리가 먼저 아네)
蒌蒿滿地蘆芽短 (루호만지노아단·물쑥은 땅에 가득하고 갈대 싹은 짧게 돋아나니)
正是河豚欲上時 (정시하돈욕상시·지금이 바로 복어가 강을 거슬러 올라올 때로다)
화폭 속 오리가 헤엄치는 모습을 보고 “물이 따뜻해진 것을 오리가 먼저 안다”라며 촉각적 이미지를 더했다. 또한 그림에는 없는 “복어가 올라올 때”라는 구절을 통해 봄의 제철 생선까지 연상시키며 생동감을 극대화했다.
소동파의 ‘자제금산화상’(自題金山畫像)도 뛰어난 작품이다. 소동파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 금산사라는 절에 걸려 있던 자신의 초상화를 보고 스스로 지어 남긴 제화시다.
心似已灰之木 (심사이회지목·마음은 이미 불타버린 재와 같은 나무토막이요)
身如不繫之舟 (신여불계지주·몸은 어디에도 매어두지 않은 일엽편주라네)
問汝平生功業 (문여평생공업·그대 평생의 업적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黃州惠州儋州 (황주혜주담주·황주, 혜주, 그리고 담주뿐이라 답하리라)
황주, 혜주, 담주는 모두 소동파가 유배를 갔던 곳이다. 초상화 속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파란만장했던 삶을 덤덤하면서도 달관의 모습으로 요약했다.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노장 사상이 물씬 묻어난다.
소동파의 ‘소상죽석도’(瀟湘竹石圖)는 소동파가 직접 그린 수묵화로, ‘고목괴석도’(枯木怪石圖)와 함께 현재 세상에 단 두 점만 전해지는 그의 귀한 회화 작품 중 하나다. 그림의 중심에는 기이한 모양의 괴석(바위)이 배치돼 있고, 그 주변으로 바람에 흔들리는 듯한 대나무(죽석)가 뻗어 있다.
소상(瀟湘)은 중국 호남성의 소수(瀟水)와 상수(瀟水)가 만나는 지역으로, 전통적으로 문인들이 유배를 가거나 은거하며 자연을 노래하던 상징적인 공간이다. 소동파는 직접 가보지 못한 소상의 평원과 거친 자연을 상상하며 서예의 필법을 회화에 적용해 거칠고 힘찬 먹선으로 대나무와 바위를 표현했다. 이는 외형을 똑같이 그리는 것보다 작가의 내면세계와 정신을 표현하는, “시와 그림은 본래 하나”라는 ‘사의’(寫意)를 강조한 문인화의 시초가 됐다.
‘소상죽석도’(瀟湘竹石圖)의 여백에는 소동파 본인의 낙관(落款)뿐만 아니라 원나라와 명나라 시대의 학자, 수집가 등 26명이 작품이 전해져 내려온 내력, 감상평 등을 담은 모두 합쳐 3000자의 발문과 인장(도장)이 빽빽하게 더해져 있다. 후대의 문인들이 이 그림을 보며 소동파의 정신에 공감하고 시를 보태면서, 작품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문학적 소통의 장’으로 완성됐다.
‘시서화’는 노장 사상과 관계가 깊다.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법과 예를 구축하고자 했던 유가 사상과는 달리, 노장 사상은 자연의 이치를 중요시 했다. 힘의 논리에 의해 작동되던 정치 체계에 환멸을 느끼던 이들은 명상적이고 자연친화적인 노장 사상에 매료돼 당나라 말기에 이르러 ‘산수’(山水)로써 형상화되기 시작한다.
중국의 산수화는 화풍과 그리는 기법, 그리고 화가의 신분에 따라 크게 북종화(北宗畫)와 남종화(南宗畫)로 구분된다. 명나라 말기 천재 예술가이자 중국 회화사상 거대하고 압도적인 영향력을 미친 동기창(董其昌)이 당나라 시절 불교의 선종(禪宗)이 북선(北禪·꾸준한 수행을 강조한 돈수 중심)과 남선(南禪·단박의 깨달음을 강조한 돈오 중심)으로 나뉜 것에 비유해 정립한 개념이다. 외면적인 형태를 구사하는데 치중했던 화원 중심의 북종화와 달리 남종화는 보다 추상적이고 정신적인 표현을 선호한다. 당연히 문인화 혹은 시서화는 남종화의 계보에 속한 장르다.
북송(北宋)의 대문인 문동(文同)의 ‘묵죽도’(墨竹圖)는 ‘문인 묵죽화’의 시원이자 전범(典範)으로 꼽히며, 문인화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그림이다.
중국의 그림에는 ▲그림 속에 시가 있다(畵中有詩·화중재시) ▲그림의 뜻이 붓보다 먼저 있다(意在筆先·의재필선) ▲자연과 사람이 하나로 어우러진다(天人合一·천인합일) ▲글씨와 그림은 한 몸이다(書畵同體·서화동체)라는 사상이 녹아져 있다. 한자 자체가 자연과 사물의 모양을 본뜬 상형문자인 까닭에 글씨와 그림은 동체(同體) 또는 동원(同源)으로 생각했다. 이런 제화시는 중국 사상사의 한 갈래로, 중국이라는 나라의 국가적 자긍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강현철 논설실장(hckang@dt.co.kr)실시간 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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