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서 논설위원
미국-이란 전쟁이 마무리되는 분위기다. 양국은 합의안을 놓고 막판 조율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 유가가 안정세를 보이는 것은 이런 기대를 반영한다. 중동 전체가 화약고로 번질 수 있다는 공포도 누그러지고 있다.
이렇게 전쟁이 끝을 향해 가는 기류 속에서 세계는 이란이라는 나라의 '버티는 힘'을 다시 들여다보고 있다. 이번 전쟁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한 가지 질문이 따라붙는다. "왜 이란은 저토록 오래 버텨내는가?" 미국의 압도적인 군사력과 경제 제재, 국제적 고립 속에서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 이유를 단순히 군사력이나 전략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이란을 지탱하는 배경에는 시아파가 오랜 세월 축적해온 '순교의 정치학'이 자리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이슬람 역사상 가장 비극적이면서도 강력한 상징인 '순교자 후세인'이 있다.
서기 632년, 예언자 무함마드가 후계자를 명확히 지명하지 않은 채 세상을 떠났다. 공동체 지도자인 칼리프를 누가 맡을지가 최대 과제로 떠올랐다. 당시 다수는 무함마드의 오랜 동료이자 장인인 아부 바크르를 추대했다. 이것이 수니파 전통의 시작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무함마드의 사촌이자 사위인 알리가 정당한 후계자라는 생각도 강했다. 훗날 시아파가 되는 흐름이다. 다만 이 시점에선 이슬람이 갈라진 것은 아니었고, 정치적·정통성 논쟁에 가까웠다.
그런데 4대 칼리프 알리 사후 우마이야 왕조가 등장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무아위야 1세가 자신의 아들 야지드를 후계자로 지명하면서 칼리프 체제가 세습 왕조로 바뀐 것이다. 많은 이들은 이에 반대했다. 가장 강하게 저항한 인물이 알리의 아들이자 무함마드의 외손자인 후세인이었다. 야지드 1세는 후세인에게 충성을 맹세하라고 요구했다. 고개만 숙였다면 목숨은 물론 상당한 지위와 부귀영화도 누렸을 것이다. 후세인은 거부했다. 그는 야지드 체제를 인정하는 순간, 이슬람 공동체가 '정의와 신앙'이 아닌 '권력과 세습'에 종속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불의와 타협하느니 죽음을 택하겠다"고 결심했다.
680년, 후세인은 가족과 추종자 등 70여 명을 이끌고 이라크 쿠파로 향했다. 쿠파 주민들이 "당신만이 정당한 지도자"라며 도움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후세인 일행은 카르발라에서 4000여 명의 우마이야 군대에 포위됐다. 시아파 전승에서는 "사흘 동안 물 한 모금도 허락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사실상 말려 죽이려 한 것이다. 죽음을 예감한 후세인은 천막 안으로 사람들을 불러 조용히 말했다. "저들은 나만 원한다. 떠나라. 붙잡지 않겠다." 그리고 등불을 꺼버렸다. 혹시라도 체면 때문에 떠나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까 봐서였다. 잠시 뒤 다시 불을 밝히자 놀라운 장면이 펼쳐졌다. 아무도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
전투는 사실상 학살이었다. 후세인은 장렬하게 전사했다. 목은 잘려 창끝에 꽂혔다. 그러나 후세인은 권력에 굴복하지 않고 정의를 위해 죽음을 택한 '영원한 순교자'가 되었다. 후세인이 남긴 저항과 희생의 정신은 단순한 종교적 추모에 머물지 않는다. 이란 혁명 이후 정치 체제의 핵심 서사로 흡수됐다. '매일이 아슈라(후세인 애도일)이고 모든 땅이 카르발라'라는 격언은 불의에 맞서는 투쟁 자체가 종교적 의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래서 이란의 전쟁 서사에는 늘 순교 개념이 등장한다. 혁명수비대나 친이란 무장세력이 전사자를 '순교자'로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번 전쟁에서도 이는 반복되고 있다. 최고 지도자와 군 수뇌부가 제거되고 도시가 공습당해도 흔들리지 않고 있다. 물론 순교 정신만으로 이번 전쟁을 설명할 수는 없다. 이란은 장기전·비대칭 전략으로 싸우고 있다. 그러나 이를 지탱하는 정신적 토대가 후세인의 '카르발라 서사'라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미국이 간과한 것은 바로 이 지점이었다.
이번 전쟁은 한 사회를 지탱하는 서사가 얼마나 강력한 힘이 되는지를 보여준다. 한국도 이제는 성장의 숫자만이 아니라 사회를 묶어주는 공동의 가치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갈등과 분열이 깊어지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큰 이익보다는 사회를 하나로 붙드는 연대와 신뢰의 힘일지도 모르겠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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