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군 공격으로 화염에 휩싸인 도네츠크 지역 크라마토츠의 한 건물. EPA 연합뉴스
러시아군 공격으로 화염에 휩싸인 도네츠크 지역 크라마토츠의 한 건물. EPA 연합뉴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겨냥한 대규모 공습 개시를 공식화하며 외국 외교관과 국제기구 인력, 심지어 미국 외교관들에게까지 사실상 ‘대피 권고’를 내렸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4년 4개월 동안 러시아가 이처럼 공개적이고 직접적인 표현으로 키이우 전역에 대한 폭격 가능성을 경고한 사례는 드물었다는 점에서 긴장이 급격히 고조되고 있다.

특히 이번 공세는 최근 러시아 점령지 대학 기숙사 공격으로 수십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데 대한 보복 성격이 강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러시아 관영 타스 통신에 따르면 러시아 외무부는 25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민간인 공격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키이우 내 우크라이나 군수산업 시설에 대한 타격을 개시한다”고 밝혔다. 러시아 측은 공격 목표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전문가들의 지원을 받는 드론 관련 시설과 우크라이나군 지휘소 등을 지목했다.

러시아는 동시에 키이우 체류 외국인들에게도 강한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러시아 외교부는 외교 공관 직원과 국제기구 대표부 인력을 포함한 외국인들이 가능한 한 빨리 키이우를 떠나야 한다고 밝혔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은 이날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과의 통화에서 키이우 주재 미국 외교관과 미국 시민들 역시 대피해야 한다는 점을 직접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러시아 외교부는 “라브로프 장관이 미국을 포함해 키이우에 공관을 둔 국가들이 자국 외교 인력과 시민들의 대피를 권고했다는 점을 루비오 장관에게 상기시켰다”고 밝혔다.

이번 경고는 실질적 군사행동의 사전 신호라는 해석이 나온다. 러시아는 전날에도 키이우를 겨냥한 대규모 공격을 감행해 최소 4명이 숨지고 91명이 다친 것으로 알려졌다. 전선 지역이 아닌 수도 중심부를 상대로 연속적인 압박에 나선 것이다.

러시아의 강경 대응 배경에는 지난 22일 발생한 루한스크 지역 기숙사 공격 사건이 자리하고 있다.

러시아 측에 따르면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 점령지인 루한스크주 스타로빌스크의 대학 기숙사를 드론으로 공격했고, 이 과정에서 학생 16명이 숨지고 42명이 다쳤다. 러시아는 이를 “민간인 대상 공격”으로 규정하며 대규모 보복을 예고했다.

반면 우크라이나군은 당시 공격 목표가 인근 러시아군 사령부였으며, 러시아가 민간인 피해를 과장·왜곡하고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전쟁 양상도 다시 ‘상호 전략 인프라 타격전’으로 확대되는 분위기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공습 위협 속에서도 러시아 본토 석유 시설에 대한 장거리 드론 공격을 이어갔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우크라이나군은 이날 러시아 브랸스크주의 석유 저장시설을 타격했다.

최근 우크라이나의 드론 공격으로 피해를 본 러시아 정유시설의 처리 능력은 하루 23만8000t, 연간 기준 약 8300만t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는 러시아 전체 정유 처리 능력의 약 25% 수준이다. 지난 21일 공격을 받은 시즈란 지역 원유 처리시설 역시 이날 가동을 중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경고에 물러서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안드리 시비하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이날 엑스(X)를 통해 “우리는 현재 파트너 국가들과 함께 러시아의 협박에 굴복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러시아가 미국 외교관과 외국인 대피를 직접 거론한 것은 향후 키이우에 대한 공격 강도가 한층 높아질 가능성을 시사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라브로프 장관의 발언이 루비오 장관의 친서방 행보 강화와 맞물려 나온 점도 주목된다. 루비오 장관은 26일 러시아 영향권에서 벗어나 서방과 밀착을 강화하고 있는 아르메니아를 방문하는데, 러시아는 이를 자국 세력권에 대한 도전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규화 대기자(david@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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