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5세기 그리스의 작은 도시국가들은 세계의 운명을 결정할 만큼 거대한 세력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 사이에서 벌어진 전쟁은 2500여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국제정치의 가장 위험한 질문으로 남아 있다. 바로 ‘투키디데스의 함정’(Thucydides Trap)이다. 최근 미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이를 언급했다. 미중 관계가 이제 단순한 무역 갈등이나 기술 경쟁을 넘어, 역사적으로 가장 위험한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과연 기존 패권국과 신흥 강대국은 충돌을 피할 수 있을 것인가.
◆아테네와 스파르타는 왜 충돌했나
투키디데스는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이자 군인이다. 그는 전쟁을 신화나 운명으로 설명하지 않고, 인간의 욕망과 공포, 권력의 변화를 중심으로 분석했다는 점에서 ‘과학적 역사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그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충돌을 기록했다. 당시 스파르타는 육상 군사력의 최강자였다. 하지만 아테네가 해상 무역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급부상하면서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물론 서로 전쟁을 피하려는 시도는 있었다. 외교 협상도 있었고 30년 평화조약도 체결했었다. 그러나 거대한 전쟁으로 폭발했다. 그것이 27년 동안 이어진 펠로폰네소스 전쟁(기원전 431~404년)이다.
투키디데스는 “아테네의 부상과 그로 인해 스파르타가 느낀 공포가 전쟁을 불가피하게 만들었다”고 규정했다. 핵심은 신흥 강대국의 부상과 기존 패권국의 불안이다. 새로 힘을 키운 국가가 기존 질서를 흔들고, 기존 강국은 자신의 지위를 빼앗길까 두려워하면서 충돌 가능성이 커진다고 그는 분석했다.
미국의 정치학자 그레이엄 앨리슨 하버드대 교수는 이 역사적 패턴을 현대 국제정치에 적용해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란 용어를 만들었다. 그는 지난 500년 역사에서 기존 패권국과 신흥 강대국이 충돌한 16개 사례를 분석했다. 그중 12번이 실제 전쟁으로 이어졌다. 스페인과 포르투갈, 영국과 독일, 러시아와 일본, 미국과 일본처럼 패권국과 신흥 강대국의 경쟁은 대부분 군사적 충돌을 동반했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기존 강대국은 지위를 잃을지 모른다는 불안에 휩싸였고, 급부상한 국가는 새로운 질서를 요구하면서 긴장이 폭발했다는 것이다.
◆공포와 불신에 갇힌 패권 경쟁
그렇다면 지금 세계는 어떤가. 많은 전문가들은 미국과 중국이 이미 ‘투키디데스의 함정’ 입구에 들어섰다고 본다.
중국은 더 이상 단순한 ‘세계의 공장’이 아니다. 반도체에서 인공지능(AI), 전기차, 배터리, 희토류, 우주 산업까지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일대일로(一帶一路) 프로젝트를 통해 글로벌 공급망과 항만 네트워크를 구축했고, 위안화 국제화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 입장에서는 단순한 경제적 경쟁자가 아니라 자국을 위협하는 나라로 보일 수밖에 없다. 반대로 중국은 미국을 자신들의 부상을 막으려는 세력으로 본다. 첨단 반도체 수출 통제, 중국 기업 제재, 대만 문제 개입, 인도·태평양 전략 강화 등 미국의 움직임을 사실상 ‘포위 전략’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를 보면 서로가 서로를 두려워하는 구조다. 바로 투키디데스가 말한 위험한 심리다. 문제는 이런 충돌이 반드시 지도자들의 계획이나 결단 속에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대부분의 전쟁은 작은 사건 하나가 결정적 도화선이 되기도 한다. 남중국해 우발 충돌, 대만해협 군사 긴장, 사이버 공격, 반도체 공급망 봉쇄 같은 사안이 어느 순간 통제 불능으로 번질 수 있다는 의미다.
특히 지금의 미중 갈등은 과거 냉전보다 더 복잡하다. 냉전 시기 미국과 소련은 경제적으로 거의 분리돼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미국과 중국은 다르다. 두 나라는 서로 거대한 무역 상대국이며 공급망으로 깊게 연결돼 있다. 군사적으로는 경쟁하지만 경제적으로는 서로 의존하는 기묘한 구조다. 충돌의 파급력이 훨씬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 관건은 미국과 중국이 ‘함정’을 뛰어넘을 수 있느냐다. 실제로 앨리슨 교수는 전쟁을 피한 사례들도 있었다고 말한다. 기존 패권국이 국제 질서 일부를 조정하고, 신흥국 역시 급격한 충돌을 자제했을 때다. 다시 말해 패권국의 포용과 신흥국의 절제가 동시에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미국 내부에서는 중국 견제가 민주·공화 양당의 초당적 기조가 됐다. 중국 역시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국가 목표로 내세우며 쉽게 물러설 분위기가 아니다. 양국 모두 정치적으로 강경 노선을 선택할 유인이 크다.
투키디데스가 2500여 년 전 기록한 경고가 오늘날 다시 소환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누가 더 강한가가 아니다. 이성을 유지하면서 공존의 원칙을 끝까지 지켜내는 것이야말로 미·중이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피하는 가장 강력한 전략이다.
박영서 논설위원(pys@dt.co.kr)실시간 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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