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89년 열린 남북체육회담 수석 대표로 참석해 ‘한반도기’와 ‘탁구·축구 남북 단일팀’ 구성에 합의한 중재(中齋) 장충식 단국대 명예이사장이 지난 20일 9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21일 단국대 등에 따르면 고인은 1932년 중국 톈진에서 태어났으며, 선친은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훈한 독립운동가 장형(1889∼1964) 선생이다.
중국에서 백범 김구(1876∼1949) 선생과 함께 독립운동을 한 장형 선생은 광복 후 귀국해 단국대를 세웠다. 장형 선생은 1964년 눈을 감을 때 장 이사장에게 “대학에는 공부하는 학생과 이념을 가진 학생, 두 부류가 있다. 공부하는 학생들은 교수들이 알아서 챙길 테니 너는 이념을 가진 아이들을 도와줘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서울대 사범대(역사학과, 수료)와 단국대 정치과를 졸업한 고인은 고려대 사학과(석사), 미국 브리검영대(박사과정 수료)에서 수학했고, 1961년 단국대 교수로 부임했다.
박정희 대통령에게 도움을 청한 끝에 1967년 단국대를 종합대로 승격시킨 그는 36년간 총장 및 이사장으로 재임하며 한국 최초의 지방캠퍼스인 천안캠퍼스를 설립했다. 2007년에는 서울 한남동캠퍼스를 죽전캠퍼스로 이전했다.
대한민국올림픽위원회(KOC) 부위원장을 맡아 우리나라가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개최하는 데 기여했고,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1989년에 열린 남북체육회담에 남측 수석대표로 참석했다.
당시 북측 김형진 수석대표와 회담할 당시 단가는 ‘아리랑’으로 하자는 남측 제의를 북측이 수용했고, 단기는 흰색 바탕에 하늘색으로 우리나라 지도를 넣자는 북측의 제안을 고인이 받아들였다. 이를 두고, 당시 ‘장충식 대표가 북한 의견을 너무 쉽게 받아들인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지만, ‘한반도기’는 1991년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부터 사용되며 남북 화해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1991년 세계탁구선수권대회와 세계청소년축구대회의 ‘남북 단일팀’ 구성에도 합의했다.
고인은 북경아시안게임 대한민국 단장(1990년),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 남북단일팀 단장(1991년)을 맡았다. 1991년 광복 이후 최초로 조직된 청소년 남북 축구 단일팀이 우승 후보인 아르헨티나를 꺾고 8강에 오르는 기적을 연출했을 때, 남북 관중이 하나가 되어 ‘아리랑’을 합창하는 모습이 많은 이들의 기억에 여전히 남아 있다.
고인은 2000년 대한적십자사 총재로 재직하며 제1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 사업을 성사해 남북 화해의 새 장을 여는 데 앞장서기도 했다.
1970년 동양학연구소를 설립한 그는 30여년간 350억원을 투입해 ‘한국한자어사전’(전 4권, 1996년 완간)과 표제자 5만천자, 어휘 45만여개를 수록한 한자사전인 ‘한한(漢韓)대사전(전 16권, 2008년 완간)’을 편찬했다. 1991∼1998년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회장을 맡아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 복원과 ‘백범일지’ 중국어 번역을 거들었다.
작가로도 데뷔한 그는 2003년 첫 소설 ‘그래도 강물은 흐른다’, 2019년 두 번째 소설 ‘아름다운 인연’을 펴냈다. 2020년 12월 단국대 이사장에서 물러났다.
유족으로는 부인 신동순 여사, 장호성 단국대 이사장과 3녀가 있다. 빈소는 충남 천안 단국대학병원 장례식장 특1호실, 영결식은 24일 오전 10시 단국대 죽전캠퍼스 체육관에서 단국대학장으로 엄수된다.
박양수 기자(yspark@dt.co.kr)실시간 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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