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제분사 7곳에 역대 최대 과징금
국제 밀값 오를 땐 함께 인상… 내릴 땐 버틴 제분업계 담합
정부 보조금 받고도 담합 지속
라면·빵값의 출발점인 밀가루 시장이 제분사들의 짬짜미에 6년간 휘둘리다 6700억원대 과징금 철퇴를 맞았다.
제분사들은 국제 밀값이 오를 때는 가격을 빠르게 올리고, 내릴 때는 인하를 늦추며 공급 물량까지 나눠 가진 것으로 조사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대한제분 △CJ제일제당 △사조동아원 △삼양사 △대선제분 △삼화제분 △한탑 등 7개 제분사가 6년간 밀가루 공급가격과 물량을 담합한 혐의를 적발하고 6710억45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고 20일 밝혔다. 공정위 담합 사건 가운데 가장 큰 과징금 처분이다.
이들 7개 제분사는 국내 기업 간(B2B) 밀가루 시장의 87.7%를 차지한 과점 사업자다. 공정위는 이들이 시장 지배력을 바탕으로 6년간 24차례에 걸쳐 밀가루 가격 인상·인하 폭과 시기를 함께 정하고, 거래처별 공급 물량과 순위까지 나눠 가진 것으로 판단했다.
2018년 대한제분이 농심 공급 물량 약 30%를 확보하자 제분업계 경쟁은 더 치열해졌다. 사조동아원은 할인 행사까지 벌이며 물량 방어에 나섰다. 이듬해 11월 대한제분과 CJ제일제당, 사조동아원 등 상위 제분사 임원들은 삼양사 관계자와 만나 가격 경쟁을 줄이고 물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하자는 데 뜻을 모았다. 공정위는 이 시점부터 밀가루 담합이 시작된 것으로 봤다.
7개 제분사는 2019년 11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농심과 팔도, 풀무원 등 대형 거래처를 상대로 19차례, 중소형 거래처와 대리점을 상대로 5차례 등 모두 24차례에 걸쳐 밀가루 가격과 공급 물량을 담합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은 담합 기간 대표·실무급 회의를 55차례 열고 가격 인상 폭과 시기, 거래처별 공급 물량 등을 조율했다. 상위 업체끼리 먼저 큰 틀을 정한 뒤 실무진이 세부안을 맞추는 방식이었다. 직접 회의에 참석하지 않은 업체들에는 전화 등으로 합의 내용을 공유했다. 일부 하위 업체는 상위 업체에 먼저 연락해 가격 인상 계획과 협상 상황을 확인한 것으로 나타났다.
담합 범위는 해마다 더 커졌다. 2019년 말에는 대한제분, CJ제일제당, 사조동아원, 삼양사 등 4개사가 농심과 팔도 등 대형 거래처를 상대로 가격과 물량을 맞췄다. 이후 2020년부터는 삼화제분과 대선제분, 한탑까지 가세했다. 이들은 중소형 거래처와 대리점에 공급하는 일부 밀가루 제품 가격까지 함께 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부터는 7개 제분사 모두가 전체 거래처를 상대로 밀가루 전 제품 가격을 함께 조정한 것으로 조사됐다.
국내 제분업계는 밀가루 원재료인 밀을 대부분 수입에 의존한다. 공정위는 제분사들이 국제 밀값이 오를 때는 가격을 함께 빨리 올리고, 밀값이 내린 뒤에는 가격을 천천히 내린 것으로 판단했다.
실제 이들은 2020~2022년 국제 밀값이 뛰자 거래처별 가격 인상 폭과 시기를 함께 맞췄다. 반대로 2023년 이후 밀값이 안정되자 가격 인하 폭을 최소화하고 인하 시점도 늦춘 것으로 나타났다.
또 물가 안정을 위해 정부가 제분업계에 471억원의 보조금을 지원했지만 담합은 이어졌다. 공정위는 보조금을 받으면서도 가격 담합을 지속한 점을 중대한 법 위반으로 판단했다.
제분사들이 24차례에 걸쳐 가격과 물량을 함께 조정하면서 밀가루 가격은 크게 뛰었다. 2022년 9월 기준 밀가루 판매가격은 담합이 시작된 2019년 말보다 업체별로 38~74%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제분사들은 담합으로 시장 점유율을 지키고 수익성까지 끌어올렸다. 실제 담합에 참여한 상하위 업체 모두 영업이익률이 이전보다 개선됐다.
공정위는 이들 제분사가 2006년 제재 이후에도 다시 담합에 나선 점을 문제로 봤다. 정부 보조금을 받는 기간에도 담합을 이어간 점도 중대한 법 위반으로 판단했다.
이에 법 위반 행위 금지와 독자적 가격 재결정 명령 등 시정명령을 내렸다. 실제 과징금은 위반 정도와 담합 가담 수준 등을 반영해 산정했다.
과징금은 사조동아원이 1830억9700만원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대한제분 1792억7300만원 △CJ제일제당 1317억100만원 △삼양사 947억8700만원 △대선제분 384억4800만원 △한탑 242억9100만원 △삼화제분 194억4800만원의 과징금이 각각 부과됐다.
한편 농림축산식품부는 담합 업체를 정책자금지원 대상에서 제외하고, 불공정행위가 재발하지 않도록 매월 밀가루 가격 동향을 확인하며 관리·감독을 강화하기로 했다.
세종=강승구 기자 kang@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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