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실적보다 연체 관리… 은행권 KPI 판이 바뀐다
"많이 빌려주기보다 안전하게" 4대은행, 건전성 경쟁
우량차주 확보·부실채권 관리 강화… 생존 전략 전환
은행권의 영업 전략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한동안 은행권의 성과 경쟁을 이끌었던 대출 확대 중심 기조가 한계에 달하자 이제는 연체율과 부실채권(NPL) 관리, 우량 차주 확보와 같은 '건전성 경쟁'이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4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이 하반기 핵심성과지표(KPI) 개편에 나서면서 은행권의 평가 기준 자체가 달라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4대 은행은 올해 하반기부터 영업점과 직원 평가에서 가계대출 실적 비중을 축소하고 자산 건전성과 리스크 관리 항목을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은행별로 보면 국민은행은 현재 4대 은행 중 가장 보수적인 리스크 관리 체계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KPI의 소비자보호·건전성 배점을 확대하고 특화 심사역도 대거 확충할 방침이다. 신한은행은 최근 은행권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질적 성장'을 강조하는 곳 중 하나다. 최고경영진 CEO평가를 연동해 수익성 및 리스크 지표 연계를 강화하고 있다.
하나은행은 전담 심사 조직을 신설했다. 무작정 대출을 내주는 것을 막고자 기업여신심사부에 '첨단전략산업 신규 심사팀'을 통해 리스크 관리를 고도화할 계획이다. 우리은행은 일반 영업점의 기업대출 평가기준을 생산적 금융과 우량 기업에 가중치를 주며 기업금융 영업에 주력할 방침이다. 은행들의 이같은 변화는 최근 금융환경 변화와 맞닿아 있다. 지난 2~3년간 이어진 고금리 국면에서 은행들은 예대마진 확대를 기반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하지만 금리 인하 기대감이 커지면서 향후 이자이익 증가세 둔화가 불가피해졌고, 경기 둔화 우려 속에 연체율과 부실 위험은 높아지고 있다. 실제로 금융권에서는 자영업자 대출과 취약 차주 중심으로 건전성 악화 가능성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특히 은행들은 무리한 대출 확대보다 '우량 자산 선별'에 무게를 싣는 분위기다. 소득 안정성이 높고 연체 가능성이 낮은 우량 차주 확보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단기 실적을 위해 공격적으로 대출을 늘리기보다 장기적으로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는 자산 구조를 만드는 것이 핵심 과제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은행 내부 평가 체계 변화도 이러한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 그동안 일부 영업 현장에서는 대출 실적 중심 KPI가 과도한 경쟁을 유발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에 따라 앞으로는 연체 관리 수준, 부실채권 감축 성과, 고객 자산의 안정성 등이 주요 평가 요소로 반영될 가능성이 크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이제는 외형 성장보다 질적 성장에 집중해야 하는 시기"라며 "리스크 관리 역량이 곧 은행 경쟁력이 되는 구조로 바뀌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장에서는 이번 변화가 단순한 KPI 조정을 넘어 은행권 영업 문화 전반에 영향을 줄 것으로 내다봤다.
대출 확대 경쟁이 둔화되면 가계대출 증가 속도 역시 이전보다 안정될 가능성이 높다. 반면 신용도가 낮은 차주들의 자금 조달 문턱은 높아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금융당국 역시 금융 안정 차원에서 은행권의 건전성 관리 강화 기조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분위기다.
주형연 기자 jhy@dt.co.kr
실시간 주요뉴스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