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최대 D램 제조업체인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가 판매 호조에 힘입어 지난 1분기 매출 508억위안(약 11조원), 순이익 330억위안(약 7조원)이라는 실적을 올렸다고 한다. 불과 얼마 전까지 천문학적인 적자를 내며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 조롱받던 중국의 반도체 산업이 이젠 ‘반도체 굴기’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괄목상대한 발전을 이룬 것이다. 미국의 촘촘한 반도체 첨단 장비 수출 제한속에서도 ‘차이나 스피드’를 앞세운 중국의 추격은 범용 D램을 넘어 한국이 독점해온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의 문턱까지 도달했다는 평가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는 전기차, 배터리, 휴대폰, 조선, 철강, 석유화학, 휴머노이드 로봇 등 다른 산업과 마찬가지로 세계 제조업을 선도하겠다는 기업들의 의지에 정부의 천문학적 보조금 지원과 규제 철폐가 어우러진 결과다. 중국 정부가 지난 10년간 반도체에만 쏟아부은 보조금은 무려 200조원에 달한다. 지난 2016년 삼성을 따라잡겠다는 목표로 설립된 CXMT는 창립 10년 만에 글로벌 D램 시장의 5% 수준을 차지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에 이은 4위 업체로 부상했다. 베이징, 상하이 등으로 팹 설비 확장을 가속화하고 있으며, 확장이 완료되면 월 웨이퍼 투입량이 20만장까지 늘어 2029년 세계 시장 점유율은 15%로까지 뛸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올해 월간 6만장 정도의 웨이퍼를 HBM3 생산에 투입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CXMT는 6월로 예상된 상장을 통해 최소 295억위안(약 6조4569억원)의 자금을 조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여기에 올해 예상되는 순이익까지 설비와 R&D(연구개발)에 투자하면 한국과의 기술 격차를 좁히는 속도는 더욱 가팔라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중국의 반도체 장비 산업 또한 정부의 막대한 보조금과 국산화 정책에 힘입어 국산화율이 35%에 (2025년 기준)달하는 등 무서운 속도로 성장 중이다.
일본과 독일의 D램 산업 몰락의 역사가 웅변으로 말해주듯 반도체 기술은 한번 추월당하면 영영 따라잡을 수 없는 국가 생존의 영역이다. 지금 중국의 기세를 꺾지 못하면 대한민국은 순식간에 반도체 변방으로 밀려나게 된다. 사태가 이토록 긴박한데도 국내 상황을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글로벌 시장에서 사투를 벌여야 할 삼성전자의 노조는 영업이익의 15% 성과급 지급 명문화를 요구하며 총파업을 위협하고 있다. 올 삼성전자 예상 영업이익으로 따질때 성과급 총액은 무려 40조원 이상이다. 영업이익을 어떻게 배분할지는 순전히 경영권에 해당하는 사안으로 단체교섭의 대상이 아니다. 1분 1초가 아쉬운 차세대 HBM4 주도권 싸움 현장에서 라인이 멈춰 서고 신뢰도가 추락하면 그 반사이익은 고스란히 중국 기업 등에 돌아갈 뿐이다.
정치권 역시 안일하기는 마찬가지다. 경쟁국들이 보조금 폭탄을 투하하며 총력전을 펼치는 동안 우리 정치권은 ‘대기업 특혜’라는 철 지난 프레임에 갇혀 세제 혜택 수준에 그쳤다. R&D를 위해 주 52시간 근로를 탄력적으로 운영해달라는 호소조차 귀담아 듣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은 삼성전자 혼자만의 힘에 의한 것이 아니라며 숟가락을 내밀고 있다.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은 생전 “장쩌민, 후진타오 등 중국 최고지도자들이 방한하면 꼭 삼성의 반도체 사업장을 방문해 반도체의 핵심기술인 회로선폭에 대해 물었다”며 “반도체 산업이 중국에 발목을 잡히면 다시는 회복할 수가 없다”고 했다. 노·사·정이 국가적 위기 앞에 머리를 맞대고 초격차 기술 확보에 사활을 걸지 않는다면, 우리 경제를 지탱해온 반도체가 무너지는 건 시간 문제다. 턱밑까지 쫓아온 중국의 D램 산업은 대한민국 경제의 버팀목이자 안보 자산인 반도체 패권의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경고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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