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일 산업부장
삼성전자 노사가 18일 중앙노동위원회(이하 중노위) 사후조정을 재개하기로 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총파업 예고일이 오는 21일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대화로 파업을 막을 마지막 기회가 아닐까 싶다.
과정을 보면 정말 반전에 반전을 거듭했다. 지난 16일 오전까지만 해도 정부의 ‘긴급조정권’ 발동 외에는 파업을 막을 방법은 없을 것 같았다. 전영현 삼성전자 DS부문장이 임원 대상 경영현황 설명회에서 “성과에 안주하지 말자”고 나섰고, 최승호 삼성그룹 초기업노조 삼성전자 지부 위원장이 사후조정 녹취를 공개하는 등 갈등은 고조됐다.
극한으로 치닫던 대치는 16일 오후 급반전됐다. 정부의 끊임없는 물밑 중재 노력에 이날 오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대국민 사과가 이어지면서 대화의 물꼬가 트였다. 이 과정에서 노사가 서로 일정 수준 양보하기도 했다. 사측이 노조의 요구를 수용해 여명구 DS부문 피플팀장으로 대표교섭위원을 교체한 것이나, 노조 역시 김형로 부사장의 참석을 수용한 점 등이다.
2차 사후조정은 500만 삼성전자 주주, 100만명 안팎인 삼성전자와 관계사 직원들, 그리고 우리나라 경제성장과 수출 선봉장인 K-반도체의 미래까지 결정한다는 점에서 그야말로 초미의 관심사다.
노조의 예고대로 오는 21일부터 18일 간 파업이 강행되면 협력사 생산 차질과 주가 하락 등 간접적 영향까지 포함해 최대 100조원의 손실이 발생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는 경제성장률 하락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게 여러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앞서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올해 경제성장률을 기존 1.9%에서 2.5%로 0.6%포인트(p) 상향조정했다. 0.6%p 중에서 반도체의 기여도가 0.3%p 이상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KDI 측은 삼성전자 파업 시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지만, 삼성전자는 세계 메모리반도체 시장에서 30% 이상의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는 우리나라 대표 수출 기업이다.
필자는 이번 협상에서 1990년대 이후 출생한 이른바 ‘젠지(Gen Z) 노조’의 개인주의적이면서도 합리적인 성향에 기대를 걸고 있다. 현재 삼성전자 노조가 요구하는 핵심은 ‘영업이익 15%’ 성과급 재원 활용, 연봉의 50%인 성과급 상한 폐지, 그리고 이에 대한 명문화다.
삼성전자 인사 시스템을 모르면 복잡할 얘기지만, 요약하면 간단하다. 복잡한 인사 시스템으로 인해 나만 손해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 싫은 것이고, 어찌됐든 회사가 번 만큼 더 많은 성과급을 달라는 것이다. 대신 현대자동차 등 50대 이상이 주축인 다른 대기업 노조와 달리 ‘정년 연장’이나 ‘로봇 도입 금지’와 같은 목소리는 나오지 않고 있다.
반면 사측이 가장 부담을 느끼는 요인은 바로 ‘명문화’다. 영업익 15%를 N분의 1로 나누는 식의 명문화를 해버리면 ‘통상임금’으로 간주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향후 천문학적인 퇴직금 부담까지 떠안아야 한다.
이를 고려하면 노사가 서로 부담 없이 ‘당장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방안에서 답을 찾으면 어떨까 싶다. 최근 2~3년 간 삼성전자 노조는 경쟁사인 SK하이닉스보다 못한 보상을 받았던 것에 자존심이 상해있다. 삼성전자 역시 세계 초일류를 지향하고 있는 만큼 ‘업계 최고’ 수준의 보상을 해줄 명분이 있다. 그래야 지금까지 SK하이닉스나 애플, 구글로 빠져나갔던 주요 인재들이 삼성전자로 다시 돌아올 길이 열린다.
다만 노조 측도 사측이 ‘영업이익 15%’ 명문화를 부담스러워 하는 만큼 ‘업계 최고’와 같은 표현을 수용하는 것을 고려할 수 있다. 이미 경쟁사인 SK하이닉스가 ‘영업이익 10%’를 성과급 재원으로 활용하기로 한 만큼, 굳이 숫자를 쓸 필요는 없을 것이다.
지금의 갈등은 노사 간 불신, 그리고 대한민국 반도체 인재의 해외 유출 등 쌓여왔던 것들이 수면 위로 노출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는 속담이 있다. 물론 고용 유연화 등 제도적인 숙제가 있긴 하지만, 이번 협상이 노사가 회사의 새 도약을 위해 다시 힘을 모으는 계기가 되길 기원한다.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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