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고평가·래깅효과로 ‘착시 실적’

유가변동성 속 정제마진 둔화 우려

국내 정유업계가 올해 1분기 시장 기대를 웃도는 실적을 기록했지만, 이익의 질과 향후 지속 가능성을 둘러싼 우려가 커지고 있다.

중동 지역 분쟁으로 국제 유가가 급등하면서 재고평가 이익과 시차 효과가 반영됐으나, 향후 유가가 안정화되거나 하락할 경우 실적이 급격히 둔화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1분기 정유사들의 영업이익 합산 규모는 5조9635억원을 기록했다. 회사별로는 SK이노베이션이 2조1622억원, GS칼텍스 1조6367억원, 에쓰오일 1조2311억원, HD현대오일뱅크 9335억원이다.

이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초기인 2022년 2분기 7조5536억원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다만 업계 내부에서는 이번 실적을 마냥 긍정적으로 보기 어렵다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영업이익 증가분 상당수가 장부상 이익인 재고평가 이익과 원유 도입 시점과 제품 판매 시점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래깅효과'에 기인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이익은 실제 현금 유입을 수반하지 않는 회계적 요인에 가깝다.

국제회계기준(IFRS)상 재고 평가 방식에 따르면 유가 상승기에는 과거에 낮은 가격으로 들여온 원유 재고가 원가에 반영되면서 장부상 이익이 확대된다. 이 과정에서 시장 가격 대비 낮은 원가가 반영돼 재고평가 이익이 발생하게 된다.

업계에서는 1분기 영업이익의 약 50~60%가 이러한 재고 관련 이익으로 추정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원유 도입 가격은 전월 유가를 기준으로 하는 반면 석유제품 판매 가격은 당월 시세를 반영하는 구조로 인해 추가적인 시차 이익도 발생한다.

시장에서는 현재의 실적 흐름이 지속되기 어렵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중동 분쟁이 완화될 경우 유가 하락으로 재고 관련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앞서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당시에도 정유업계는 합산 12조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기록했지만 이후 실적이 빠르게 둔화되면서 횡재세 논의가 힘을 잃은 바 있다.

또한 중동산 원유 수급 차질에 따른 운송 경로 변경과 수입선 다변화로 원가 부담이 높아질 가능성도 있다. 고유가 장기화 시에는 석유제품 수요 둔화와 가격 하락이 동시에 나타나며 정제마진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여기에 최고가격제가 2개월 이상 지속되는 점도 부담 요인으로 꼽힌다. 현재는 대규모 정제 설비와 수출 경쟁력을 기반으로 일정 부분 실적 방어가 이뤄지고 있지만, 국내 시장에서는 원가 반영이 제한적인 상황이다.

최고가격제 손실 보전 기준과 정산 방식이 불확실한 가운데 향후 보상 규모 축소나 정산 지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러한 정책 불확실성은 중장기 투자 및 경영 계획 수립에도 영향을 주며 보수적인 경영 기조를 강화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SK이노베이션은 최근 1분기 실적 설명에서 "래깅효과와 재고 관련 이익은 회계 장부상 숫자로, 향후 유가 하락 시 줄거나 소멸할 수 있는 일시적 이익"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상현 기자 ishsy@dt.co.kr

국토교통부가 버스·화물 운송사업자에 지급하는 경유 유가연동보조금 한도를 상향 조정한다고 밝힌 12일 서울 서초구 만남의광장 주유소 모습. 연합뉴스
국토교통부가 버스·화물 운송사업자에 지급하는 경유 유가연동보조금 한도를 상향 조정한다고 밝힌 12일 서울 서초구 만남의광장 주유소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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