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시진핑·푸틴(왼쪽부터). AP·타스 연합뉴스 자료사진
트럼프·시진핑·푸틴(왼쪽부터). AP·타스 연합뉴스 자료사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중이 끝난 지 불과 나흘 만에 이번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중국을 찾는다.

미·중 정상회담 직후 곧바로 이어지는 중·러 정상외교는 중국이 미·러 두 강대국 사이에서 외교적 존재감을 한층 키우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특히 일주일 사이 미국과 러시아 정상을 연이어 맞이하게 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 국제사회의 시선이 쏠리는 중이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17일 중국 외교부 발표를 인용해 푸틴 대통령이 시 주석 초청으로 오는 19일부터 20일까지 중국을 국빈 방문한다고 전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5일 2박 3일간의 방중 일정을 마치고 귀국한 직후 이뤄지는 방문이다. 앞서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도 중국이 같은 달 안에 미국과 러시아 정상을 모두 맞이하는 것은 전례 없는 일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푸틴 대통령은 방중 기간 시 주석과 정상회담을 열고 양국 현안과 포괄적 전략 협력 강화 방안, 국제 및 지역 정세 등을 폭넓게 논의할 예정이다. 회담 이후에는 공동성명과 정부 부처 간 협력 문서도 채택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방중이 더욱 주목받는 이유는 직전의 미·중 정상회담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미국과의 관계 관리 필요성과 러시아와의 전략 공조 유지라는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안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3일부터 15일까지 중국을 방문해 시 주석과 회담을 갖고 무역 갈등과 대만 문제, 이란 정세 등을 논의했다. 양국은 협력 확대 의지를 강조했지만 대만과 중동 문제를 둘러싼 시각차는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외교가에서는 푸틴 대통령 방중의 핵심 목적 가운데 하나로 미·중 정상회담 결과를 직접 확인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최근 브리핑에서 “푸틴 대통령이 중국 방문 기간 중 미·중 간 상호작용에 대해 중국 측과 의견을 교환할 것”이라며 “직접적인 정보를 얻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는 러시아가 최근 미·중 관계 흐름을 예민하게 주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해석이 나온다.

중국 국제관계 전문가 선딩리는 싱가포르 연합조보 인터뷰에서 “푸틴 대통령이 단순히 미·중 정상회담 결과를 파악하기 위해 직접 중국을 방문할 필요는 없다”면서도 “그럼에도 직접 움직였다는 것은 러시아가 미·중 관계 변화 가능성에 상당한 관심과 경계심을 갖고 있다는 뜻”이라고 분석했다고 연합뉴스가 전했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중국이 미국과 관계 개선에 속도를 낼 가능성을 우려할 수밖에 없다는 시각도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이후 러시아의 대중 의존도가 크게 높아진 상황에서 중국이 미국과 전략적 긴장을 완화할 경우 러시아의 외교적 입지가 상대적으로 좁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중국 역시 미국과 러시아 어느 한쪽도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처지다. 베이징 외교가에서는 중국이 미국과는 관계 안정 가능성을 열어두는 동시에 러시아에는 양국 간 전략적 신뢰가 흔들리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보내려 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러 사이에서 절묘한 균형 외교를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 내부에서는 최근 이어지는 정상외교를 자국의 국제적 영향력 확대 흐름으로 해석하는 분위기도 나타나고 있다.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이날 전문가 분석을 인용해 “국제사회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중국이 안정성과 확실성의 원천으로 인식되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사회과학원 산하 러시아·동유럽·중앙아시아연구소의 장훙 연구원도 “점점 더 많은 국가가 중국과의 교류를 기회와 안정, 성장의 상징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 중국은 올해 들어 미국과 러시아뿐 아니라 유럽 국가들과 글로벌사우스 국가 지도자들과의 정상외교도 활발히 이어가고 있다. 이는 미·중 전략 경쟁이 심화하는 가운데 중국이 비서방 진영과 신흥국을 중심으로 외교적 영향력 확대를 시도하는 흐름으로 읽힌다.

중국중앙TV(CCTV)는 이날 시 주석과 푸틴 대통령이 헤이룽장성 하얼빈에서 개막한 제10회 중·러 박람회에 각각 축전을 보내 협력 확대 의지를 강조했다고 보도했다. 시 주석은 “양국 각 분야 협력이 지속적으로 심화하며 풍성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평가했고, 푸틴 대통령 역시 “상호 호혜 협력의 새로운 전망을 열어 양국 국민에게 실질적 혜택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박람회는 중국 상무부와 헤이룽장성 정부, 러시아 경제발전부와 산업무역부가 공동 주최하며 ‘신뢰·협력·상생’을 주제로 진행된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유럽 고위 당국자들을 인용해 “푸틴 대통령은 시진핑·트럼프 회담 분위기를 직접 평가하고 중·러 관계를 재확인하려 할 것”이라며 “중국이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려 한다는 점이 드러난다”고 분석했다.

다만 중국의 영향력은 국제질서를 주도할 만한 위치에 오르지 못했고 한계도 존재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국은 최근 중동 정세에서 기대만큼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했다. 부동산 침체와 내수 부진 등 경제 문제도 여전히 부담으로 남아 있다. 반도체와 인공지능(AI) 등 첨단 기술 분야에서도 미국과의 경쟁에서 우위는커녕 오히려 밀리는 양상이다.

이 때문에 베이징 외교가에서는 이번 연쇄 정상외교가 중국의 외교적 위상 확대를 보여주는 동시에, 미국 중심 국제질서 속에서 중국이 어느 정도까지 독자적 영향력을 확장할 수 있을지를 시험하는 무대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규화 대기자(david@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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