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대국 美에 ‘투키디데스’ 언급…‘G2 인정’ 노려
대만 문제에 대해 “잘못 건드리면 중미 충돌” 위협
트럼프 “회담 훌륭했다, 미중관계 좋아” 원칙적 발언
시 강경 입장, 美 전략자산 소진한 것과 무관치 않아
첨예 갈등 희토류-AI칩, 첫날 회담선 합의점 못 찾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9년 만에 베이징에서 다시 마주 앉았지만, 회담장의 공기는 협력보다는 패권 재편을 둘러싼 신경전에 가까웠다.
특히 시 주석이 회담 모두발언에서 또다시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꺼내 들며 미국에 사실상 ‘G2(주요 2개국) 체제’를 인정하라고 압박했다고 할 수 있다.
‘G2’라는 말은 일부 언론에서 흔히 쓰고 있지만, 미국과 중국의 전체 경제규모(GDP)와 1인당 소득이 더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들어 미국은 손사래를 치는 언급이다.
중국 관영 중국중앙(CC)TV에 따르면 시 주석은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미중이 이른바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뛰어넘고 대국 관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 수 있는가”라고 말했다. 그는 “이는 역사와 세계, 인민들의 질문이며 양국 지도자들이 함께 써야 할 시대적 답안”이라고 강조했다.
투키디데스의 함정은 기존 패권국과 신흥 강대국이 충돌 끝에 전쟁으로 치닫는다는 국제정치 개념이다. 중국은 그동안 이 표현을 “미국과 중국은 공존 가능한 두 개의 초강대국”이라는 메시지로 활용해왔다. 시 주석이 이번 회담에서 다시 이를 언급한 것은 미국 중심의 일극 질서가 약화됐으며 이제 중국을 동등한 전략 축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요구를 노골화한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중국은 이번 회담에서 대만 문제를 사실상 미중 충돌의 ‘레드라인’으로 규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 주석은 비공개 회담에서 미국이 대만 문제를 잘못 건드릴 경우 중미 간 직접 충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이는 남지나해와 대만해협을 둘러싼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미국의 군사적 개입 여지를 사전에 차단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공개적으로는 원론적 반응만 내놨다. 그는 회담 직후 “훌륭했다”고 평가하며 “중국은 아름답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만 문제가 논의됐느냐는 질문에는 답변하지 않았다. 미중 관계가 “가장 좋은 상태”라는 식의 외교적 수사만 반복했을 뿐, 중국 측 공세에 명확한 입장은 밝히지 않았다.
국제사회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태도 배경에 미국의 전략적 부담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은 최근 이란과의 군사 충돌 장기화 속에서 항모전단과 전략폭격기, 미사일 방어체계 등 핵심 전략자산을 중동에 대거 투입한 상태다. 이 과정에서 막대한 군사·재정 소모가 발생했다.
중국은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드는 모습이다. 미국이 중동 전선에 발이 묶인 사이 동아시아에서 중국의 전략적 공간이 넓어지고 있다는 판단이다. 실제로 중국 내부에서도 미국의 패권 유지 능력이 약화되고 있다는 담론이 힘을 얻고 있다.
시 주석이 이번 회담에서 투키디데스 함정을 재차 거론한 것도 단순한 역사 비유가 아니라 “미국이 더는 중국을 일방적으로 억누를 수 없는 시대가 왔다”는 현실 인식을 미국 측에 각인시키려는 계산이라는 분석이다.
중국의 대표적 국제정치학자인 정융녠 홍콩중문대 선전캠퍼스 교수 역시 최근 인터뷰에서 “이미 G2 구조는 현실화됐다”며 미국이 제로섬 사고를 버리고 중국과 협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이 더 이상 ‘도광양회’ 전략에 머물지 않고 ‘대국굴기’를 전면화하고 있다는 의미다.
첫날 회담에서는 양국이 핵심 현안의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 미국은 중국의 희토류 공급망 장악에 불안을 느끼고 있고, 중국은 미국의 AI 반도체 수출 통제로 첨단산업 발전에 제약을 받고 있다.
결국 이번 회담은 미중 갈등 해소보다는 새로운 국제질서의 힘겨루기를 확인한 자리라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 최강대국이지만 중동 전선에서 전략 자산을 소진하며 위축돼 있고, 중국은 이를 계기로 미국에 사실상의 양강 체제를 인정하라고 압박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규화 대기자(david@dt.co.kr)실시간 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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