先종전-後핵협상 사전합의 불발중 외무 브리핑

‘해상봉쇄-자금동결 해제, 레바논 종전’ 先요구

핵농축 20년 금지도 거부, 트럼프 “용납 못한다”

이란 “선의로 관대한 제안…美 진지함 증명을”

트럼프 방중앞 이란 “우리 친구 中” 개입 원해

‘해협 봉쇄 반대’ 내부 의심엔 “국가위계 준수”

‘최고지도자 감독 받냐’…“SNSC 지침 따라”

‘하르그섬 기름띠, 원유 버리나’ 보도엔 “거짓”

이란 정권의 외교부는 미국과의 선(先) 종전, 후(後) 핵협상을 위한 사전 합의가 일단 불발된 가운데 외교의 끈 자체는 놓지 않으면서 “상대는 자신이 진지하다는 걸 증명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11일(현지시간) 이란 국영 IRNA통신 등에 따르면 에스마일 바가이 이란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기자들로부터 ‘어제(10일) 파키스탄 중재를 통해 미 측에 전달된 이란 측의 대미 제안에 대한 답변과 어젯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 발언’에 대한 질문을 받고 이같이 답했다. 대변인과 기자단 간 문답은 장시간 이뤄졌는데, 한국의 HMM 나무호 피격에 관한 내용은 없었다.

바가이 대변인은 “호르무즈 해협에서 안전한 항행이 이뤄지도록 하자는 우리의 제안이 과도한 요구인가. 레바논을 포함해 전 지역에서 안전과 평화를 확립하자는 이처럼 중요한 문제가 책임을 벗어난 요구인가”라며 자국의 ‘관대한 제안’을 미 측이 이스라엘의 시각에 치우쳐 거부했다고 답했다.

에스마일 바가이 이란 외무부 대변인. [이란 준관영 타스님 통신 보도 갈무리]
에스마일 바가이 이란 외무부 대변인. [이란 준관영 타스님 통신 보도 갈무리]

그러면서 “이란은 자국 국익과 정당한 권리를 추구하는 데 진지함을 보여온 동시에 ‘선의와 합리적인 방식으로 외교적 과정에 참여’해 왔단 점에서, 상대는 자신이 진지하단 걸 증명해야 한다”고 했다. ‘만족하지 못한 미국이 다시 대이란 군사공격을 추진한다면’이라는 질문에도 “우리는 필요하다면 싸운다”고 전제하면서도 “선의와 합리적인 방식으로 외교 과정에 참여해왔다”며 같은 답변을 했다.

다만 그는 “미국은 지난 20년간 참여한 모든 외교 과정에 불이행을 저질렀다. 2015년 이후, 2018년에는 JCPOA(이란과 미국·영국·프랑스·중국·러시아·독일이 체결한 핵협정)에서 탈퇴했고, 지난 1년 동안엔 그보다 더 심하게 협상과 외교 테이블 자체에 대한 공격으로 나아갔다”고 지적했다.

이란 측에서 ‘당장 해결’을 원하는 사안으론 “전쟁의 모든 형태를 포함한 종식, 특히 레바논(헤즈볼라-이스라엘 전쟁)을 포함해, 페르시아만과 호르무즈 해협에서 항행의 안전과 보장”이라며 “미국이 상선들을 상대로 행하는 불법적 조치와 해상 강도행위를 중단시키는 문제도 의제”라고 밝혔다.

‘쟁점은 무엇이고, 미 측의 무례한 답변에도 직접 협상이 다시 열릴 가능성이 있냐’는 물음엔 “한쪽은 오로지 자기 기본권을 추구하는 반면 다른 한쪽은 상대 권리 침해에 집착하는 상황”이라며 “이란의 동결자금 해제는 미국이 이란 국민에 베푸는 ‘양보’가 아니라 우리 권리에 대한 정당한 요구다. ‘해상봉쇄’란 이름으로 행해지는 조치 중단 역시 불법행위 중단이며 이 역시 이란에 주는 ‘양보’가 아니다”고 재강조했다. 향후에도 “모든 잡음을 개의치 않고” 자국 이익 확보에 주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앞서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의 현지시간 10일자 보도에 따르면 이란은 ‘향후 20년간 우라늄 농축을 중단하고 주요 핵시설을 해체’하란 미 측 요구를 사실상 거부하는 내용을 파키스탄에 전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의 이른바 ‘대표들’로부터 온 답변을 읽었다”며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절대 용납 못한다”고 선 그은 상태다. 이란은 역제안에서 일부 농축우라늄을 희석한 뒤 이란 내 저장하고, 나머지를 미국 아닌 제3국에 반출하며, 핵협상 파기시 핵물질 반환을 보장하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또 미국이 이란 선박과 항만 봉쇄를 해제하면 상업용 상선을 대상으로 호르무즈 해협을 점진적 개방하고, 이후 30일간 핵 문제를 집중적으로 논의하는 방안을 담은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자금 동결 해제, 협상 기간 내 이란 원유 판매 허용, 전쟁 배상금 지급 등도 구체적으로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2025년 10월 한국 부산에서 만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AP=연합뉴스]
지난 2025년 10월 한국 부산에서 만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AP=연합뉴스]

바가이 대변인은 트럼프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회담차 13~15일 방중하는 가운데 ‘중국의 중재가 이란과 미국 사이의 어떤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보느냐’는 기자 질문엔 “중국 방문은 (미·중) 양자 방문이며 그들 자신에게만 관련된 일”이라면서도 “외무장관(아바스 아라그치)이 최근 중국을 방문했고 우리 견해와 고려사항을 전달했다. 중국은 우리 입장을 잘 알고 있다”고 했다.

특히 그는 “중국은 이란 이슬람공화국 압박과 조치들이 단지 일시적이고 지나가는 문제가 아니라, 미국 일방주의를 강화하려는 세계적 흐름의 일부이며 이게 국제 규범에 피해를 주고 있단 점을 정확히 알고 있다”며 “우리의 ‘중국 친구’들이, 미국의 불법적·폭압적 조치가 지역과 국제 경제안정과 안보에 미치는 결과와 파장을 경고하는데 이 기회를 어떻게 활용할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아울러 “아라그치 장관의 방중은 매우 중요한 방문이었다”며 “우리는 이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중국의 모든 공동 행동과 모든 이니셔티브를 활용하고 환영할 것”이라고 중 측을 끌어당겼다. 이는 주중이란대사가 이날 X 계정에 “어떤 잠재적 합의이든 반드시 강대국의 보증을 수반해야 한다”며 러시아와 특히 중국의 대미협상 개입을 원하는 글을 올린 것과 맞물려 보인다.

바가이 대변인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이란의 농축우라늄을 자국 이전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이란도 미국도 반대한 내용인데 협상 과정에 논의된 적 있냐’는 물음엔 “현재 단계에서 우리 초점은 전쟁 종식에 맞춰져 있다. 향후 이란 핵물질과 농축 관련 논의에 어떤 결정이 내려질지, 우리가 어떤 옵션을 고려할지 ‘때가 되면 논의하게 될 사안’이다. 그때가 오면 말하고 알리겠다”고만 했다.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 최고지도자 친위 군사조직) 강경파 중심으로 대미 협상 자체에 반발하는 주장도 제기돼온 가운데, 외무부에 불편한 질문 역시 나왔다. ‘외무부가 호르무즈 해협 통제(봉쇄)에 반대하고 있다는 말들이 있는데 사실인가’란 물음에 대변인은 “외무부는 이슬람공화국의 한 부분이며 국가의 위계에 따라 내려지는결정들은 외무부에게도 전적으로 준수의 대상”이라고 답했다.

그는 “(이란이 연안국가로서) 이 해역이 군사적 침략을 계속하는 데 악용되지 않도록 필요한 조치를 취하는 건 완전히 정당한 일이다. 외무부는 분명 이와 관련해 명확한 입장을 갖고 있다. 또 외무부는 스스로 국가의 의사결정체계와 분리된 존재가 아니란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고 해명했다.

이후로도 ‘여전히 일부 인사들이 언론과 거리에서 협상팀과 아라그치 장관을 공격하고 있다. 외무부는 어떤 기관들과 협력해 협상을 진행 중이며 대미 메시지 교환은 최고지도자(모즈타바 하메네이)의 직접 감독 하에 이뤄지고 있냐’는 질문이 나왔고 대변인은 “외교 기구의 어떤 행동이든 법적으로나 논리적으로나 최고국가안보위원회(SNSC)가 내린 지침에 기반해 이뤄져야 한다”는 원칙을 내세웠다.

지난 5월 6일(미 동부 현지시간) 호르무즈 해협상 이란의 주요 원유 수출 터미널인 하르그섬 서쪽 앞 페르시아만 해상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이는 유출된 기름띠 실제 색상과 흑백 사진. [유럽우주국 제공 AP=연합뉴스 사진 갈무리]
지난 5월 6일(미 동부 현지시간) 호르무즈 해협상 이란의 주요 원유 수출 터미널인 하르그섬 서쪽 앞 페르시아만 해상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이는 유출된 기름띠 실제 색상과 흑백 사진. [유럽우주국 제공 AP=연합뉴스 사진 갈무리]

한편 바가이 대변인은 ‘서방언론이 호르무즈 해협 인근 또는 하르그섬 근처에서 기름띠가 발견됐다며 이란이 저장능력을 넘어서는 추출 원유를 바다에 버리고 있다고 주장했다’는 질문에 “명백한 거짓이다. 우리는 페르시아만, 오만해, 호르무즈 해협 해양환경이 훼손되는 것에 매우 우려하고 있다”며 미군 주둔과 전쟁으로 책임을 돌리고 “이른바 기름띠 관련된 주장들은 전부 꾸며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핵심 원유 수출 시설이 있는 페르시아만 하그르섬 앞 해상에서 7일(미 동부시간) 대규모 기름띠가 관찰됐다. NYT는 “위성 사진을 통해 원유 유출 장면을 확인했다”며 “기름띠 면적은 약 51km², 양으로 따지면 3000배럴을 넘는 수준”이라고 보도했다.

NYT에 의하면 이란이 2002년 핵개발 의혹이 제기된 후 서방의 경제제재와 만성적 투자 부족으로 원유 인프라를 유지·보수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전쟁까지 겹쳐 원유저장고가 포화에 이른 가운데 유정(油井)에서 넘쳐나는 원유를 처리하지 못해 애를 먹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한기호 기자(hkh89@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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