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학부터 시작, 양원주부학교와 ‘일성여중고’ 일궈
때를 놓쳐 학업을 제때 마치지 못한 성인 여성들의 ‘배움의 한’을 풀어준 ‘한국의 페스탈로치’ 이선재 일성여자중고등학교 교장이 지난 10일 90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1936년 개성에서 태어난 고인은 1·4 후퇴 때 서울로 피란을 온 실향민이다. 주변의 도움으로 10대 시절 학업을 이어갈 수 있었던 그가 간직했던 평생의 꿈은 자신처럼 어려운 환경 등으로 배움의 기회를 얻지 못한 이들을 돕겠다는 것이었다.
고인은 1963년 당시 야학이었던 일성고등공민학교에서 교사로 시작, 1972년에 교장을 맡았다. 이후 학교를 양원주부학교와 일성여자중고등학교로 발전시켰다. 또 구로공단 등의 여성 근로자를 위한 일성일요학교를 운영했다. 2005년에는 한국 최초의 학력인정 성인 초등학교인 양원초등학교를 설립했다.
일성여중고는 40∼80대 여성 만학도들이 중학교 또는 고등학교 과정을 2년 만에 이수할 수 있는 학력인정 평생학교다.
배울 기회를 놓친 성인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마련해주는 데 바친 그의 삶은 스위스의 교육개혁가인 요한 하인리히 페스탈로치의 삶을 닮았다. 그래서 그는 생전에 ‘한국의 페스탈로치’라 불리기도 했다.
홈페이지에 남겨진 학교장 인사말에는 “가난한 살림 때문에 또는 여자라는 이유 하나로 배움의 때를 놓친 여성들에게 참교육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부디 배움의 열차에 동승하셔서 밝고 활기찬 기쁨을 누리시길 바랍니다”라고 적혀있다.
그의 헌신적인 삶을 통해 배움의 기쁨을 누리게 된 만학도들의 숫자는 올해 2월까지 6만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그는 사회에서 선한 일을 한 학생들을 교장실로 불러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책에서 읽은 좋은 이야기들을 매주 학생들에게 들려주며 삶의 이정표가 되기도 했다.
현재 일성여자중고등학교는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지난 2007년 평생교육법이 학교와 재단 법인만 평생교육 시설 설립 주체로 인정되도록 개정되면서다. 이 개정법에 따라 개정 이전에 세워진 일성여중고 역시 법인으로 전환해야만 존속할 수 있는 상황이다.
학교 관계자는 “학교를 완전히 법인화하지 않는 한 유지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법인화를 하기 위해서는 운동장이나 실험실 등의 시설들이 갖춰야 하는데 쉬운 상황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유족은 아들 이원준(세종대 교수)·이혁준(일성여중고 행정실장)씨, 딸 이승은씨, 사위 김성실(전남대 교수)씨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발인은 13일 자정, 장지는 동화경모공원이다.
박양수 기자(yspark@dt.co.kr)실시간 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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