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부터 삼전 노사 사후 조정

노동권보다 투명한 성과급 요구

2030 노조원 설득 못하면 파업

젠지세대도 부문별로 요구 상이

DX부문 의견 미반영에 탈퇴선언

1·2·3차 협력사 1700곳 고용불안

노봉법 이후 노무관계 기민 대응

현대차도 노무부서 사장급 격상

제미나이가 그린 일러스트.
제미나이가 그린 일러스트.

1990년대 이후 출생한 이른바 ‘젠지(Gen Z) 노조’가 기업 경영의 새로운 리스크로 급부상했다.

이들은 과거 노동인권을 수호하기 위해 분신했던 전태일 열사 같은 노동운동에는 큰 관심이 없다. 대신 ‘정유라 부정입학’과 같은 부당한 대우를 당한 것을 보면 기꺼이 광장으로 나간다. 어릴 때부터 개인 미디어인 스마트폰을 장난감처럼 다룬 세대다.

이번 삼성전자 파업에서도 이들 젠지 노조의 성향이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들은 영업이익의 15%를 성과급으로 투명하게 줘야 한다며, 자신이 일한 만큼의 댓가를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11일부터 시작되는 삼성전자 파업 사후조정 절차 역시 이들 젠지 노조의 결정에 달린 것으로 보인다.

노조 집행부가 사측과 합의안을 만들어도 과반 이상의 조합원 찬성을 얻어야 하는데, 일단 최대 노조인 삼성 초기업노조 삼성전자 지부 조합원의 80%가 바로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DS부문이다.

실제로 지난달 23일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현장에서 총파업 결의대회 현장에 참여한 노조원 대다수는 40대 이하 젊은 직원들이었다.

조합원 평균 연령대에 대한 통계는 없지만, 삼성전자 DS 부문 남성 직원 평균 근속연수는 11.7년으로, 같은 회사 가전·모바일(DX) 부문 직원의 17.4년에 비해 월등히 낮다. 자동차나 정유화학, 철강 등 다른 산업부문 대기업 직원 평균 근속연수와 비교해도 마찬가지다.

이들 ‘젠지 세대’ 노조의 특징은 ‘일자리 사수’나 ‘노동권’이 아닌 ‘내가 일한 만큼 계산해달라’다. 이들은 원하는 댓가를 받기 위해 남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 소위 ‘블랙리스트’ 제작·유포설이 돌았을때도 “좀 과했다”며 사과했지만, 파업에 대해서는 전혀 물러서지 않았다.

이재명 대통령이 “나만 살자는 게 아니라 노동자 모두가, 국민 모두가 함께 살 수 있는 연대 의식이 필요하다”고 삼성전자 노조 파업을 비판하는 듯한 발언을 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았고,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과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의 비판 발언에는 오히려 유감을 표했다.

심지어 이들과 공동투쟁본부를 구성한 DX부문 중심 삼성전자노동조합동행이 자신들의 요구를 전혀 반영해 주지 않는다며 탈퇴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래도 젠지 노조는 아무 반응이 없다.

대신 최승호 초기업노조 위원장은 8일 사후조정 참여를 발표하면서도 “조합원이 만족할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망설임 없이 총파업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문제는 젠지 노조의 이 같은 행동이 삼성전자라는 기업을 넘어 1700여개로 추정되는 1~3차 협력사, 그리고 국가 경제에도 심각한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반도체 라인의 연속 공정 특성 상 노조 파업으로 셧다운(일시 가동중단) 되면 재가동까지 최대 수개월이 걸리고, 그 동안 제품 생산은 물론 협력사들의 매출에도 큰 차질이 생신다.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생산라인 1개는 협력사 포함 약 3만명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중소 협력사들을 중심으로 비정규직 및 파견 인력에 대한 고용 불안이 불거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송헌재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교수 역시 최근 열린 세미나에서 파업이 현실화할 경우 공장 가동에 따른 손실이 1분당 수십억원, 하루에 1조원 수준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송 교수는 이에 더해 파업의 직접 손실보다 고객 불안과 거래선 이탈, 공급망 재편 압력이 진짜 리스크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반도체 기술은 1~2년만 뒤처져도 경쟁력을 잃는다”면서 “엔비디아, TSMC, 인텔이 사활을 건 AI 반도체 패권 경쟁을 벌이는 중에 내부 갈등 수습에 역량을 소모하는 것 자체가 막대한 기회비용”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젠지 노조의 활동은 정보기술(IT) 등 첨단 산업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할 것으로 우려된다.

과거 SK하이닉스의 4년차 직원이 이석희 사장에게 공개 이메일로 성과급 산정방식 공개를 요구한 바 있고, 이 같은 움직임은 현대차를 비롯해 SK텔레콤과 네이버 등 산업 전반으로 확산하는 중이다.

재계에서는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 시행에 젠지 노조까지 더해지면서 앞으로 노무관리의 난이도가 한층 높아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최근 현대차그룹이 노무 총괄 사령탑을 부사장급에서 사장급으로 격상한 것 역시 이 같은 흐름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여기에 이들 노조의 파업이 노노갈등, 사측에 대한 손실을 넘어 반도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업체들의 실적 저하와 고용 불안까지 야기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익명을 요청한 한 재계 관계자는 “미래보다 지금 많이 벌겠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기업은 물론 국가의 지속가능 성장동력을 잃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젠지 노조가 처음 등장했을 때 강성 운동권 노조의 힘이 빠질 것이라고 열광했는데, 이제는 젠지 노조가 과거 운동권과는 또 다른 숙제로 부상한 느낌”이라며 “젠지 노조 맞춤형으로 경영·인사·노무관리를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장우진 기자 jwj1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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