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고신용자 위주로 굳어진 기존 금융권의 대출 문턱을 낮추고, 금융의 공적 역할을 전면 재정립하기 위한 고강도 구조개혁에 착수한다. 청와대가 중·저신용자들의 금융 소외 현상을 '치밀하게 방치된 구조적 모순'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하자 금융당국이 이를 바로잡기 위해 대규모 전담 조직을 신설하며 속도전에 나서는 모습이다.
10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이달 중 '포용금융추진단(가칭)' 킥오프 회의를 개최하고 본격적인 실무 작업에 돌입한다. 이번 추진단은 금융정책국을 필두로 금융산업국, 금융소비자국, 디지털금융정책관 등 금융위 내 핵심 부서들이 총망라된 대규모 매머드급 조직으로 꾸려질 전망이다.
추진단 출범의 결정적 배경에는 금융의 '공공성 회복'을 향한 청와대의 강한 문제의식이 자리하고 있다.
앞서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현행 신용평가 체계를 가리켜 "금융이 설계한 보이지 않는 계급장"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지난 6일 국무회의에서 "(금융기관의) 공공성이 너무 취약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지적하며 금융권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강하게 주문했다. 당국의 이번 조치는 이러한 최고위층의 강경한 기조를 실제 정책으로 구체화하기 위한 발 빠른 조치로 풀이된다.
실제 수치로 드러난 중·저신용자들의 금융 소외 현상은 심각한 수준이다. 금융위에 따르면 지난해 전 금융권(은행·저축은행·상호금융·여신전문금융)이 공급한 중금리대출 규모는 27조8100억원으로 전년 대비 3조1000억원이나 급감했다. 특히 가장 큰 몫을 담당해야 할 시중은행의 공급액은 전년보다 12.7%(1조2600억원) 줄어든 8조6900억원에 그쳤다. 은행권의 중금리대출 축소는 2019년 이후 처음으로 2금융권 역시 일제히 대출 문을 닫으며 취약차주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양극화된 금리차도 뼈아픈 대목이다. 작년 8월 말 기준 중신용자(3~5분위)의 신용대출 평균 금리는 연 5.4~10.7%에 달했다. 고신용자(6~10분위)가 적용받는 4.9~5.1% 대비 최대 2배 이상 높은 이자 부담을 짊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추진단은 현행 금융 질서를 뒤흔드는 굵직한 과제들을 테이블 위에 올릴 예정이다. 핵심은 단연 '신용평가 체계의 개편'이다. 현재의 획일적이고 과거 이력 중심인 평가 방식에서 벗어나 차주의 미래 상환 가능성을 입체적으로 반영하는 대안적 평가 모델 도입이 유력하게 논의될 전망이다.
'중·저신용자 대출 공급'이라는 인터넷 전문은행의 본래 설립 취지 준수 여부를 엄격히 따져 묻고, 서민금융기관들의 정책 방향성을 원점에서 재설정하는 작업도 병행된다.
다만 기존 시장의 규칙을 바꾸는 과정에서 파생될 부작용과 관치금융 논란은 당국이 풀어야 할 최대 숙제다. 은행이 강제로 중·저신용자 대출을 늘려 부실률이 상승할 경우, 그에 따른 리스크 비용이 고신용자나 일반 금융소비자에게 전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금융위는 일방적인 하향식 지시를 지양하고, 시민단체와 사회활동가, 연구기관 등 다양한 외부 인사를 추진단에 합류시켜 공론화를 통한 사회적 합의 도출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새로운 포용금융 체계를 구축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비용 분담과 사회적 합의를 수반한다"며 "기존에 가동 중인 신용평가체계 개편 TF 등 여러 회의체와 추진단을 유기적으로 연계해 시장의 충격을 최소화하면서도 실효성 있는 대안을 만들어 낼 것"이라고 말했다.
주형연 기자 jhy@dt.co.kr
실시간 주요뉴스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