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의원, 새벽에 기습…“이것은 우리 것”

중국의 즉각적 반격…“쓰레기 치우러 왔다”

암초 하나에 물러설 수 없는 두 나라 자존심

지난 3일(현지시간) 남중국해 샌디 케이(중국명 톄셴자오·필리핀명 파가사 암초2) 암초에 상륙한 다다 키람 이스물라(왼쪽) 필리핀 하원의원 등이 필리핀 국기를 꽂은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아틴 이토 페이스북 캡처. 연합뉴스
지난 3일(현지시간) 남중국해 샌디 케이(중국명 톄셴자오·필리핀명 파가사 암초2) 암초에 상륙한 다다 키람 이스물라(왼쪽) 필리핀 하원의원 등이 필리핀 국기를 꽂은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아틴 이토 페이스북 캡처. 연합뉴스

남지나해의 한 암초를 두고 필리핀과 중국이 국기 꽂기 경쟁을 벌이고 있다. 자국 국기를 먼저 꽂고 상대의 흔적을 지우는 이른바 ‘상징물 전쟁’이 한창이다.

6일(현지시간) 필리핀 현지 언론과 외신에 따르면,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의 최전선인 ‘샌디 케이’(필리핀명 파가사 암초2, 중국명 톄셴자오)에서 필리핀과 중국이 날선 국기 게양 경쟁을 벌였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 3일 새벽에 일어났다. 필리핀의 주권 수호 민간단체인 ‘아틴 이토’(Atin Ito, 타갈로그어로 ‘이것은 우리 것’) 회원들과 다다 키람 이스물라 하원의원이 필리핀의 핵심 전초기지인 티투 섬에서 은밀히 배를 띄웠다. 이들의 목적지는 불과 4.6km 떨어진 샌디 케이.

중국 해경선이 삼엄한 감시를 펼치고 있었지만, 이들은 제트스키로 갈아타는 기동력을 발휘해 감시망을 뚫었다. 암초에 발을 내디딘 이들은 보란 듯이 필리핀 국기를 꽂았다. 이스물라 의원은 “중국의 위협적인 존재감 속에서도 우리 영토임을 증명했다”며 “이는 중국의 공격적 행위에 대한 평화로우면서도 단호한 저항”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이들이 역사적인 상륙 장면을 드론으로 촬영하려 했으나, 정작 중국산 드론의 소프트웨어가 해당 지역을 ‘비행 금지 구역’으로 설정해 둔 탓에 작동하지 않은 것이다. 중국의 기술적 통제가 남중국해 상공까지 미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면이었다.

중국의 대응은 즉각적이고 치밀했다. 중국 해경은 필리핀 측의 상륙을 ‘불법 침입’으로 규정하고, 같은 날 곧바로 샌디 케이에 올랐다. 중국 측의 대응은 단순한 국기 게양에 그치지 않았다. 이들은 필리핀 인원들이 머물다 간 자리에서 플라스틱병과 스티로폼 등 오염 물질을 수거하는 모습을 연출하며 고도의 여론전을 펼쳤다.

관변 매체인 중국 글로벌타임스는 “중국 해경이 오성홍기를 꽂아 주권을 명확히 하는 한편, 필리핀 측이 남긴 쓰레기를 수거하며 산호초 생태계를 보호했다”고 보도했다. 필리핀의 상륙을 ‘환경 파괴 행위’로 몰아세우며, 자신들이 이 해역의 정당한 관리자임을 부각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또한 금속탐지기까지 동원해 암초 전역을 정밀 조사하며 필리핀의 흔적을 완전히 지우는 치밀함을 보였다.

이번 ‘국기 꽂기 경쟁’이 벌어진 샌디 케이는 전략적으로 매우 민감한 지점이다. 필리핀이 실효 지배 중인 티투 섬과 매우 인접해 있어, 이곳을 누가 점유하느냐에 따라 주변 해역의 통제권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이 남지나해 갈등의 새로운 국면을 보여준다고 분석한다. 대규모 함정 간 충돌은 피하면서도, 민간단체와 정치인을 앞세운 ‘회색지대 전술’과 이를 맞받아치는 ‘환경 보호 프레임’이 충돌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필리핀해는 우리 것”이라는 필리핀의 주장과 “법에 따른 주권 행사”라는 중국의 주장이 암초 위에서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이규화 대기자(david@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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