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신용 세종본부장
제14대 총선 5개월 뒤인 1992년 8월 역대급 사건이 터진다. 한준수 연기군수가 여당의 관권·금권 선거를 폭로하면서다. 여당인 민주자유당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내무장관과 충남지사가 공무원 조직을 총동원했다는 사실을 터트렸다. 한 전 군수는 도지사로부터 2000만원의 선거 자금을 지원받아 지역 주민에게 손목시계를 돌렸고, 내무부에서 지방 교부금 12억원을 받아 선심 사업비로 썼다고 양심선언을 했다. 연기군은 세종특별자치시의 전신이다.
파장은 핵폭탄급이었다. 자유당 시절에서 있을 법한 폭로가 터져 나오자 민심은 들끓었고, 야권은 총공세를 폈다. 국정감사에서도 뜨거운 쟁점이 됐다. 이 사건으로 당시 노태우 대통령은 여당을 탈당하고 중립내각을 출범시켰다. 정치적으로는 조직적 관권선거가 사라지는 촉매제가 됐고, 사회적으로는 이후 봇물 터지듯 이어진 공익 제보의 효시로 작용한다.
지방선거를 약 1개월 앞둔 세종시에서 국무위원의 정치적 중립성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최교진 교육부 장관이 특정 교육감 예비후보의 선거사무소 개소식에 참석한 것을 놓고서다. 특정후보는 하필 3선 교육감 출신인 최 장관이 교육감 재임 당시 교육정책국장 등을 지낸 최측근이다. 다른 예비후보들은 사실상 ‘간접 지원’에 해당해 공직선거법 위반이라고 발끈하며 공식 사과를 촉구했다. 국민의힘은 논평을 내고 “측근을 당선시키기 위해 선거판의 병풍을 자처하며, 사실상의 ‘공개 지지 선언’을 한 것”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최 장관은 개인 자격이었다며 확대 해석에 선을 긋다가 결국 머리를 숙여야했다.
최 장관의 행보와 관련, 여러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다른 후보나 국민의힘 주장과 달리 최 장관은 개소식에서 축사를 포함해 공개적인 지지 발언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현행 법령 위반이 아닐 수 있다는 분석 또한 나온다. 실제로 공무원이 특정 후보의 선거사무소 개소식에 참석한 것만으로는 위법으로 볼 수 없다는 선거관리위원회의 비슷한 유권해석 사례가 있다. 최 장관은 개소식에 가면서 관용차를 이용하지 않았고, 수행원도 동행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사태가 확산하자 대변인실을 통해 입장문을 내고 “개인 자격으로 단순 참석했으나불필요한 논란을 야기한 것에 대해 유감으로 생각한다”고 고개를 떨궜다.
선거 코앞에서 고위공직자의 처신과 정치적 중립성에 대해 물음표를 던진 경우다. 오얏나무 아래서는 갓끈을 고쳐 매지 말라는 속담이 있다. 선거철 마다 특정 후보 주변을 오가는 공무원이 없지 않지만 고위공직자라면 차원이 달라진다. 더구나 최 장관은 국무위원이다. 그의 발걸음은 ‘공명선거’를 강조하는 이재명 정부의 기조와도 어긋난다.
김민석 국무총리가 ‘지방선거 대비 공명선거 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한 게 그 얼마 전 일이다. 선거사무 총괄 지원기관인 행정안전부도 살얼음판을 걷듯 관리 중이다. 김 총리는 회의에서 공명선거를 강조하며 공무원 등 불법 선거개입 행위에 대해선 무관용 원칙으로 엄정 대응하라고 법무부 등에 지시했다. 이 자리에는 최 장관도 참석했다. 현행 공직선거법 제9조는 공무원이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공직선거법 제85조 또한 공무원의 지위를 이용한 선거 영향 행위를 제한하고 있다. 고위직이라면 명문화된 규정을 떠나 오해를 살 일은 꿈도 꾸지 않아야 마땅하다.
세종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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