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1년 미9군 공연병으로 한국전 참전, 포화 속에서 연주
무대의 화려함 뒤로하고 영혼의 스승이 된 피아노 철학자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 메인주 다마리스코타에서 세상을 떠난 세이모어 번스타인 전 뉴욕대 교수는 건반 위의 철학자이자 음악을 통해 인류애를 실천한 보기 드문 예술가였다.
99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그는 피아노라는 악기를 매개로 인간의 영혼을 탐구했다.
특히 한국 현대사의 비극과 격동을 함께하며 우리 민족과 깊은 정서적 유대감을 쌓아온 인물이었다.
1927년 뉴저지에서 태어난 번스타인은 6살에 피아노를 처음 접한 이후 평생을 건반과 함께했다. 15세라는 어린 나이에 이미 강습을 시작할 정도로 교육적 재능이 탁월했다.
그는 1950년 한국전쟁이라는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1951년 4월 공연병의 신분으로 인천에 도착한 그는 미8군과 연합군 병사들을 위해 최전선을 누비며 연주회를 열었다. 하루에도 여러 차례 포성이 들리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피아노를 쳤으며, 이는 단순한 위문 공연을 넘어 생사의 갈림길에 선 젊은 영혼들에게 보내는 구원의 선율이었다.
번스타인과 한국의 인연은 전쟁 이후에도 멈추지 않았다.
1960년 미 국무부의 후원을 받아 다시 한국을 찾았을 때 서울은 4·19 혁명의 물결로 가득 차 있었다. 계엄령과 혼란스러운 정국 탓에 준비된 공식 콘서트는 모두 취소됐다. 하지만 그는 미국으로 돌아가는 대신 민주화를 열망하다 다친 학생들이 입원한 병원을 찾았다. 화려한 연주홀 대신 병실의 고요함 속에서 상처 입은 청년들을 위해 연주하는 그의 모습은 예술이 지녀야 할 진정한 사회적 책무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으로 남았다.
음악적 성취 측면에서 번스타인은 '무대 공포증'이라는 예술가의 치명적인 약점을 오히려 위대한 교육적 자산으로 승화시킨 인물이다.
그는 화려한 연주자의 길을 걷던 중 무대 위에서 느끼는 압박감을 이기지 못하고 은퇴를 선언했다. 그러나 이는 퇴보가 아닌 새로운 도약의 시작이었다. 그는 연주 스킬의 전수에만 집착하는 기존 교육 방식에서 벗어나, 음악을 통해 어떻게 자아를 발견하고 심리적 안정을 찾을 것인가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물인 '자기 발견을 향한 피아노 연습'과 '쇼팽 연주해석' 등의 저서는 전 세계 피아노 전공자들에게 단순한 교본을 넘어선 '음악적 성서'로 추앙받고 있다.
그의 삶이 대중적으로 다시 조명받은 것은 2014년 배우 에단 호크가 연출한 다큐멘터리 영화 '피아니스트 세이모어의 뉴욕 소네트'를 통해서였다.
뉴욕의 한 칸짜리 아파트에서 검소하게 살아가며 제자들을 가르치는 그의 모습은 성공과 명예만을 쫓는 현대인들에게 진정한 행복과 예술적 완성의 의미가 무엇인지 되묻게 했다.
2016년에는 90세에 가까운 나이에도 불구하고 국군 및 유엔군 참전 유공자 위로연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다시 찾았으며, 그곳에서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를 연주하며 과거 전우들과 한국인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거장은 우리 곁을 떠났지만, 전장의 포화 속에서 시작되어 병실의 환자들과 뉴욕의 작은 레슨실로 이어진 그의 숭고한 선율은 그가 남긴 수많은 음악 저서와 제자들의 손끝을 통해 영원히 계승될 것이다.
권순욱 기자 kwonsw8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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