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훤 부국장 겸 부동산유통부장

전태훤 부국장 겸 부동산유통부장
전태훤 부국장 겸 부동산유통부장

역사는 권력의 독선이 간신(奸臣)의 화려한 수사와 만났을 때 어떤 재앙이 벌어지는지 똑똑히 보여준다.

12세기 초 북송 8대 황제 휘종은 사치와 예술에 탐닉해 국고를 탕진하면서 나라 근간을 흔들었다. 백성의 원성이 하늘을 찔렀지만 당시 재상인 채경은 그의 학식과 명필을 앞세워 황제의 실정을 “태평성대의 증거”라며 화려한 ‘글발’로 황제의 잘못을 정당화했다. 간언(諫言) 대신 아첨의 붓을 든 채경은 결국 북송을 멸망의 나락으로 이끄는데 한몫했다.

900여 년 전 사례를 소환한 건, 금융 시스템의 기본과 시장 논리를 저버린 듯한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의 SNS 연재가 채경의 ‘붓’과 닮았다고 봐서다. 김 실장은 최근 3편에 걸쳐 국내 금융 시스템에 대해 자신의 고백과 성찰을 담아 썼다. 1편에서 신용평가 모델을 ‘과거의 잔상’이라 깎아내리고, 2편에서 중금리 시장의 실종을 ‘도넛 시장’이라는 비유로 고발했을 때만 해도 권력의 심장부에서 나온 뼈아픈 자성인가 했다. 글은 유려하고, 시스템을 향한 통찰은 날카로우며, 고백은 처절했다. 신용평가의 차가운 한계를 짚어내고 금융 양극화를 고발하는 대목에선 묵직한 성찰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3편에 이르러 그가 내놓은 ‘해결책’과 ‘결론’을 마주하는 순간, 기대는 참담함과 분노로 바뀌었다. 정책 책임자가 썼다기엔 무책임한 데다 시장의 현실을 등진 ‘유체이탈 화법’의 극치였기 때문이다. 현실을 바꾸는 정책이 아니라 현실을 비켜가는 수사에 그쳤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김 실장의 글 앞에는 지난해 저신용자 금리를 두고 이재명 대통령이 “잔인하다”면서 고신용자 금리를 올리고 저신용자 금리를 낮추라고 한 주문이 있다. ‘위험과 수익의 비례’라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근간을 뒤흔드는 발언이라는 비판이 있었기에 그동안 내부 만류가 있을 줄 알았다.

착각이었다. 몇 달이 지나 그는 유려한 펜으로 대통령의 ‘로빈후드식 몽상’을 철학적 통찰로 포장하고, “나는 이 잔인한 시스템의 공범”이라며 비장하게 고해까지 했다. 하지만 그가 진짜 통감해야 할 지점은 금융 시스템의 실패가 아니라, 금융시장 질서를 흔드는 데 앞장서고 있다는 것에 있다.

금융 본질부터 왜곡됐다. 절박한 이들에게 높은 금리를 매기는 것을 ‘효율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구조적 폭력’이라 규정했다. 따뜻한 인도주의 고백처럼 들리지만, 현실의 금융시장은 도덕 교과서가 아니다. 금리는 개인의 영혼이나 삶의 가치를 재는 척도가 아니라, 냉혹한 ‘리스크의 평가’다. 고신용자에게 금리를 더 물리고 저신용자의 금리를 깎아주자는 발상은 성실히 신용을 쌓은 이들의 주머니를 털어 리스크를 덮겠다는 위험한 선언이다.

감성적 포퓰리즘이 낳을 파국은 역사가 증명한다. 그가 거대 자본의 탐욕이라 비판한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역설적으로 “모두가 자기 집을 갖게 하겠다”는 선의에서 출발했다. 상환 능력이 부족한 이들에게도 신용 평가를 느슨히 적용해 대출을 남발한 결과가 그 재앙이었다. 이런 맹종의 끝은 금융 붕괴와 막대한 국민 혈세 투입뿐이다. 돌아오는 잔인한 청구서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김 실장의 자기부정은 또 어떤가. 그는 3편 말미에 “거칠고 과격한 질문은 내가 던졌지만, 그 해법은 금융당국과 시중은행이 내놓아야 한다”고 했다. 기만적 도주다. 정책 방향을 조율하고, 서민 금융의 구조를 설계할 수 있는 권한과 책임을 쥐고도 자신이 통제하는 시스템의 실패를 남 탓으로 묘사하고, 해결책마저 금융기관과 시장 참여자들에게 떠넘겼다.

신용의 절벽 아래로 떨어진 서민들을 위하겠다면 은행 팔을 비틀어 리스크 관리 시스템을 무시하고 금융질서를 뒤흔들 것이 아니라, 국가 재정을 투입해 보다 정교한 사회 안전망을 짜고 정부 주도의 보증을 확대하는 것이 정공법이다.

시장은 감성팔이로 굴러가지 않는다. 지금 청와대에 필요한 것은 냉철한 수학(數學)적 현실 인식과 참모의 직언이다. 곡학아세로 금융질서를 뒤흔드는 정책 발언이 쏟아지는 현실이야말로 한국 경제가 마주한 ‘잔인한 비극’이다.

부국장 겸 부동산유통부장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기사 추천

  • 추천해요 2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