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준호 부국장 겸 IT과학바이오부장
‘기술의 혼다.’ 자동차에 관심가졌던 사람 중 이 말 한 번 안 들어 본 사람 없을 것이다. 일본 자동차기업 혼다는 양산형 대중차 기업임에도 기술 기업 이미지가 강했다.
실제로 혼다는 엔진 기술과 혁신적 설계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CVCC 엔진은 1970년대 미국의 강화된 배기가스 규제(머스키법)를 통과하며 기술의 상징이 됐다. 1980년대 말에 내놓은 VTEC 엔진은 일상 주행의 고연비와 고속 주행 때의 파워라는 상반된 목표를 동시에 달성했다. 자동차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아직도 전설처럼 회자되는 엔진이다. 사람들은 이 무렵부터 기술의 혼다 외에 ‘엔진의 혼다’라는 말을 쓰기도 했다.
혼다는 자동차로 번 돈을 미래 기술에 투자하는 데도 주저함이 없었다. 2000년대 초반에는 휴머노이드 로봇 ‘아시모’를 세상에 선보이며 단순한 자동차 회사가 미래 기술에 도전하는 집단이라는 이미지를 세계에 각인시켰다. 1997년엔 순수 전기차인 ‘EV 플러스’를 내놓기도 했다.
혼다는 경영도 과감했다. 미국의 보호무역 압력을 돌파하고자 1982년 일본 자동차 업계 중 가장 먼저 미국 공장을 건설했다. 이는 도요타보다 6년이나 빠른 것이었다. 현지 생산·고용을 통해 미국 소비자와 정치권의 반감을 줄이고 브랜드 신뢰를 쌓았다.
혼다는 고장이 잘 안 나고 연비가 좋은 차로도 유명했다. 대중교통이 열악하고 국토가 넓은 미국에서 고장 잘 나는 차와 기름 많이 먹는 차는 애물단지다. 그런데 혼다는 정반대였다.
그 결과 혼다의 중형 세단 ‘어코드’, 중형 스포츠유틸리티차(SUV) ‘CR-V’ 등은 미국 시장의 대표 패밀리카로 자리잡았다. 차를 갑자기 바꿔야 하는 소비자들은 마트에서 생활용품 사듯 혼다 매장에 가서 차를 샀다. 기술과 품질, 가격에 대한 신뢰가 있기에 그다지 묻지도 따지지 않고 차를 사곤 했던 것이다.
한국에서의 성적도 좋았다. 수입차 시장 초기인 2008년 혼다는 1만2356대를 팔며 점유율 20.4%로 1위를 차지했다. 이 해 어코드는 수입차 중 베스트셀링 카였다.
그러던 혼다가 지난 2025 회계년도에 6900억엔(약 6조400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고 곧 발표할 것으로 추정된다. 상장 이후 69년 만에 처음으로 기록하는 연간 적자다. 적자의 이유는 전기차 전환 실패다. 혼다는 기존의 전기차 계획을 사실상 폐기하고 하이브리드차에 집중하기로 최근 결정했다.
이같은 전기차 ‘유턴’에서 발생하는 손실이 약 2조5000억엔(약 23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경영 악화 여파로 혼다는 한국 시장에서도 철수하기로 했다.
혼다의 실패는 ‘타이밍’을 놓치면 수십년 쌓아 온 기술과 소비자 신뢰가 한 순간에 무너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혼다가 전기차 전환을 머뭇거리고 때를 놓친 사이 테슬라 ‘모델Y’가 미국 패밀리카 자리를 빼앗았고, BYD 등 중국 전기차는 미국을 제외한 세계 시장에서 저가 공세를 펼치며 점유율을 높였다. 여기에 지난해부터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를 비롯한 각국 정부가 전기차 보조금을 끊거나 줄이자 전기차 시장의 문이 사실상 닫혔다. 혼다같은 후발주자가 들어갈 틈이 없어져 버렸다.
로봇도 마찬가지다. 인공지능(AI) 기술 발전으로 휴머노이드와 4족보행 로봇이 각광받는 타이밍에 아시모를 보유한 혼다가 뭘 했는지 아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한국이 전기차 시장에 적기에, 성공적으로 진입한 것은 천만다행이다. 전기차 전환에 실패한 외국 기업들이 내연기관차에 다시 힘을 주겠다고 하고 있지만 대세를 바꾸지는 못한다. 머지 않은 미래에 대다수 소비자들은 일정 수준의 자율주행 기능이 탑재된 전기차를 원하게 될 것이다.
한국에서도 최근 테슬라의 풀셀프드라이빙(FSD)이 승인되길 간절히 원하는 소비자들이 늘었다. 테슬라가 마치 아이폰처럼 팬덤 소비의 대상이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모든 것은 ‘타이밍’이다. 일각에서는 한국 역시 전기차 전환 전략을 늦춰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데 좋은 생각이 아니다. 오히려 강화할 때다. 그래야 테슬라와 중국차로부터 국내외 시장을 지킬 수 있다.
맹준호 부국장 겸 IT과학바이오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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