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10개월·60차례 모임… 7차례 가격 인상 모두 실행

점유율 95% 과점 구조… 출판·인쇄 부담 소비자 전가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 전경 [디지털타임스 DB]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 전경 [디지털타임스 DB]

책과 잡지 가격을 좌우하는 종잇값이 제지사들의 담합으로 수년간 70% 넘게 오르며 출판·인쇄업계 부담이 커진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인쇄용지 가격을 짬짜미한 제지사 6곳에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3383억2500만원을 부과하기로 했다고 23일 밝혔다. 과징금은 담합 사건 가운데 다섯 번째로 높은 수준이며, 제지업체 담합 사건으로는 최대 규모다.

공정위에 따르면 6개 제지사는 3년 10개월 동안 60차례 넘는 임원급 모임을 가지며 인쇄용지 전 제품 가격 인상을 합의했다.

담합에는 무림에스피, 무림페이퍼, 무림피앤피, 한국제지, 한솔제지, 홍원제지 등 6개 제지사가 참여했다. 이들의 국내 인쇄용지 시장 점유율은 매출액 기준 95%를 넘는다.

이니셜, 가명을 사용하여 별도의 종이에 작성된 경쟁사 연락처 [공정위 제공]
이니셜, 가명을 사용하여 별도의 종이에 작성된 경쟁사 연락처 [공정위 제공]

제지사 6곳은 담합 기간 7차례에 걸쳐 할인율을 줄이거나 기준가격을 올리는 방식으로 가격 인상을 합의했다. 거래처 통보 순서까지 짜고 정했고, 결론이 나지 않으면 동전이나 주사위로 순서를 가르기도 했다.

이들은 7차례 합의를 한 번도 어기지 않고 가격을 끌어올렸다. 인쇄용지 가격은 평균 71% 상승했다. 할인율이 일시적으로 늘어 가격이 내려갈 때는 다시 합의해 할인율을 줄였다.

제지사들은 안정적인 영업이익을 확보했고, 부담은 중간 유통을 거쳐 소비자에 고스란히 넘어갔다.

남동일 공정위 부위원장은 "중간에 있는 출판업계가 가격 인상 부담을 떠안는 구조로, 일부는 책값 인상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제지사 6곳은 3년 10개월 동안 수십 차례 모임을 이어가며 은밀하게 연락을 주고받으며 당국의 눈을 피해갔다. 상대방 연락처는 휴대전화에 저장하지 않고, 이니셜이나 가명으로 따로 적어 관리했다. 또 연락이 필요할 때는 본인 명의 휴대전화를 쓰지 않고 공중전화나 식당 전화, 다른 직원 휴대전화 등을 이용해 연락을 주고받았다.

공정위는 6개 제지사가 공정거래법을 위반했다고 보고, 법 위반 행위 금지와 가격 재결정 명령 등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무림에스피 3억4700만원, 무림페이퍼 458억4600만원, 무림피앤피 919억5700만원, 한국제지 490억5700만원, 한솔제지 1425억8000만원, 홍원제지 85억3800만원을 각각 부과했다.공정위는 위반 내용과 관여 정도를 고려해 한국제지와 홍원제지 등 2개 법인을 검찰에 고발하기로 했다.

아울러 공정위는 마지막 7차 합의 이후에도 기준가격이 유지돼 담합 영향이 남아 있다고 보고, 제지사들이 인쇄용지 가격을 담합 이전 수준으로 독자 재조정하도록 했다.

또 이를 점검하기 위해 향후 3년간 반기마다 변경 내역을 보고하도록 했다. 이런 조치는 2006년 밀가루 담합 이후 두 번째다.

남 부위원장은 "가격 재결정으로 더 빠르게 경쟁 가격으로 복귀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며 "독자적 가격 재결정 명령 같은 적극적인 시정조치를 계속 검토해 나갈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세종=강승구 기자 kang@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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