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아 도시 스토리 텔러
간판 없이 이어진 60여년 자리
의자 6개가 만든 작은 공동체
시장이 품은 삶, 삶이 지킨 곳
머무는 가게, 단단해지는 시간
신탄진 시장을 찾은 날이었다. 25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시장, 자리를 잃을 때마다 새로운 자리를 찾았다고 했다. 18세기 중반 충청도읍지에 처음 기록된 이 장터는 원래 신일동에 있었다. 홍수를 피해 계암장터로 옮겼고, 다시 문평동으로 옮겼다가 또 홍수로 신탄진역 뒤편 석봉동에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250년을 이어왔다.
시장의 첫인상은 여느 길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큰 도로변을 따라 상점들이 가지런히 늘어서 있었다. ‘몽땅 처분, 천 원’이 붙은 화장품 가게부터 트럭에 주렁주렁 매달린, 미어터질 듯 가득 담긴 투명한 참외 봉지, 그리고 봄꽃들이 목을 쭉 빼고 입양을 기다리는 폼새는 비슷했다. 딱히 들어갈 만한 곳도 없이 그냥 지나치게 되는 일상의 풍경이었다. 그런데 한 가게 앞에서 발이 멈췄다.
할머니 몸빼 바지와 버선 등 옷을 파는 가게였다. 가게 안 정면에 두 개, 우측에 네 개. 연두색 대형 타월로 감싼 의자 여섯 개가 가게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었다. 등받이와 앉는 자리까지 깔끔하게 감싼 타월이 너무 깨끗해서 잠시 멈칫했다. 의자들은 앉으면 길이 보이도록 방향이 맞춰져 있었다. 안에서는 누가 오는지 볼 수 있고, 밖에서 들어온 사람은 앉아 있는 사람과 자연스럽게 눈이 마주치는 구조였다. 들어서는 순간 왜 의자를 이렇게 많이 두었을까 하는 궁금함과 동시에 앉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의자에는 이미 할머니 몇 분이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내가 머무는 동안에도 어르신 몇 분이 잠시 들어오고 나가셨다. 무언가 한 아름 들고 와 놓고 가시는 분도 있었다. 할머니가 커피를 끓이는 동안 할아버지는 어르신들께 자리를 내어드렸고, 컵이 몇 번을 오갔으며, 방문객의 얼굴이 수시로 바뀌었다. 가게 안의 옷은 소품처럼 조용히 벽에 걸려 있었다. 오직 사람들이 활기차게 가게 한가운데 있는 의자로 모여들었다.
매일 옷가게로 출근하시는 할아버지는 이 가게에서 60년 넘게 장사를 했다고 하셨다. 올해 여든여덟이시다. 6.25 전쟁 때 부모님을 따라 8남매가 평양에서 피난을 오셨단다. 처음에는 거울도 팔고 생활 잡화 등 이것저것을 취급하다가 옷가게로 자리를 잡으셨다고 했다. 곁의 할머니는 같이 피난 온 여동생이라고 하셨다. 대화는 짧았지만, 세월의 무게가 가볍지 않았다. 백발이 된 남매가 같은 자리에 앉아 손님을 맞고 있었다.
오래된 가게, 동네 커피집처럼 누구나 들어와 커피를 마시고 일상을 나누다 가는 곳. 이 가게를 아는 사람들에겐 이미 이곳이 일상의 한 축으로 자리 잡은 듯했다. 가게를 찬찬히 둘러보니 간판이 없었다. “차씨네 하면 다 알아. 간판 없어도 다 알고 와.” 할아버지의 말씀이다. 간판 없는 가게 이름이 ‘차씨네’라고 세상에 요란하게 알려진 것도 아니다. 그런데 그곳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간판 없이 60년을 그렇게 버텨왔다.
시장과 할아버지는 닮은꼴이다. 시장이 홍수로 자리를 잃을 때마다 새 자리를 찾아 250년을 이어왔고, 할아버지는 전쟁으로 낯선 땅에 내려와 이 자리에서 60년을 버텼다. 자리를 잃어도 다시 자리를 잡는 것. 그것이 이 시장이, 이 가게가 살아남은 방식이었다.
오래된 장소가 가진 힘이 있다. 제인 제이콥스는 오래된 건물과 가게들이 다양한 사람들의 만남을 가능하게 하고 도시의 생명력을 유지한다고 했다. 새것만으로 채워진 도시는 효율적일 수 있지만, 관계가 없다. 관계는 시간이라는 타래가 얽히고 녹아지면서 만들어진다. 간판 없이도 ‘차씨네’를 아는 것, 타월로 감싼 의자에 누군가 늘 앉아 있는 것. 그것이 도시에서 관계가 쌓여가는 모습이다.
한 자리를 오래도록 지킨다는 것. 그 안에 얼마나 많은 날이 있었을까. 장사가 안된 날도 있었을 것이고, 시장이 자리를 옮기는 혼란도 있었을 것이다. 함께 내려온 형제들이 하나둘 곁을 떠나는 일도 있었을 터다. 그런데도 이 자리를 지켰다. 바위처럼 무던하게, 연두색 타월로 의자를 감싸는 일을 매일 반복하면서.
의자 하나의 타월이 살짝 접혀 있었다. 할아버지의 여동생이 다가와 모서리를 펴고 다시 한번 눌러주었다. 금세 자리가 반듯해졌다. 아무 말도 없었지만, 그 작은 손길에는 오랜 시간 반복해온 습관과 자리를 지켜온 사람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한 사람이 나가면 또 다른 사람이 들어왔다. 자리가 나면 누군가 앉는다. 길을 보던 시선이 안으로 모였다가 다시 밖으로 흘러나갔다. 바깥에서 지나가던 사람이 안을 들여다보고, 안에 있던 사람이 손을 들어 인사를 했다. 특별한 사건은 없었지만 자리는 계속 이어졌다.
도시에서 한 자리를 오래 지킨다는 것은 점점 어려운 일이 되고 있다. 임대료는 꾸준히 오르고, 관계를 쌓을 틈도 없이 문을 닫는 경우도 적지 않다. 간판을 달고 온라인에 올리며 어떻게든 존재를 알리려 애쓰지만, 살아남기가 그리 쉽지 않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존재를 드러낸다. 하루짜리 팝업 가게를 여는 사람, 짧은 계약을 이어가며 버티는 사람, 온라인으로라도 자신의 자리를 만드는 사람, 길가에서 묵묵히 단골을 쌓아가는 사람. 마치 반딧불처럼, 크든 작든 제 빛을 낸다.
그 반딧불들 사이에서 신탄진 시장의 이 간판 없는 가게도 오래도록 조용하고 은은한 빛을 내고 있다. 오늘도 연두색 타월로 감싼 의자 여섯 개에는 누군가 앉아 있을 것이고, 여동생은 커피를 타고 있을 것이며, 사람들은 오가고 있을 것이다.
간판이 없어도 그 가게를 찾아갈 것 같다. 오래 머물기 힘든 세상에서 우리는 오늘도 빛을 낸다. 그 빛이 얼마나 이어질지 알 수 없어도, 이 온기가 누군가에게 닿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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