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소 연준 이사’서 ‘연준 의장’으로 파격적 귀환
“대통령과 거래는 없었다”… 트럼프 금리 압박 일축
“포워드 가이던스는 불필요”… 시장 소통 방식 변화
10억개의 데이터로 물가 잡는다… 파격적 통계 예고
상원 인준 변수 ‘파월 수사’… 여당 이탈표 단속 관건
케빈 워시 美 연준 의장 후보
2006년,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이사회에 서른다섯 살의 청년이 등장했을 때 시장은 경악에 가까운 반응을 보였다.
역대 최연소 연준 이사라는 화려한 타이틀 뒤에는 ‘월가 출신의 애송이’, ‘정치적 낙하산’이라는 냉소적인 꼬리표가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그러나 2년 뒤 전 세계를 강타한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 그는 반전의 서사를 썼다. 이론에 함몰된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벤 버냉키 당시 의장의 가장 신뢰받는 ‘가교’가 되었다. 자금줄이 마른 월가의 생생한 바닥 민심을 정책실로 실어 나르며 위기 극복의 숨은 주역으로 거듭났다.
그로부터 20년이 흐른 2026년 4월, 케빈 워시(사진)는 이제 연준의 수장 후보로 다시 한번 인준 청문회장 단상에 섰다. 머리카락은 희끗해졌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눈빛은 과거보다 더욱 날카로워졌다. 스탠퍼드에서 공공정책을 공부하고 하버드 로스쿨을 거쳐 모건스탠리 부사장까지, 그의 전반생은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거쳤다. 하지만 그의 내면에는 늘 ‘현상 유지’라는 견고한 벽에 균열을 내고자 하는 혁신가의 기질이 흐르고 있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에서 대통령의 경제 브레인으로 활동할 때부터 그는 숫자에 갇힌 지표보다 시장의 역동성을 믿는 실용주의자였다.
이번 상원 은행위원회 인준 청문회에서 워시 후보자가 던진 일성은 그래서 더욱 파괴적이고 도발적이다. 그는 연준이 수십 년간 고수해 온 성역과 같은 관행인 ‘포워드 가이던스(사전 안내 지침)’를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나는 많은 동료와 달리 미래의 결정을 미리 예고해야 한다고 믿지 않는다”는 그의 발언은, 시장과 지나치게 친절하게 소통하며 오히려 투기적 수요와 변동성을 키웠던 기존 연준의 문법을 전면 부정하는 선전포고와 다름없다. 시장에 끌려다니는 연준이 아니라, 시장을 압도하는 연준을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읽힌다.
워시의 혁신 철학은 통계 산출 방식이라는 기술적인 영역에서 정점을 찍는다. 그는 자유주의 경제학의 거두 밀턴 프리드먼의 ‘현상 유지의 폭정’을 인용하며, 구태의연한 데이터 수집 방식이 급변하는 21세기 경제를 망치고 있다고 일갈했다. 그가 대안으로 제시한 것은 이른바 ‘10억개의 데이터 프로젝트’다. 정부의 경직된 통계에만 의존하지 않고 민관이 협력해 실시간으로 수집한 10억개의 방대한 가격 데이터 중 중앙값인 ‘5억 1번째 가격’을 추출해 인플레이션의 진짜 얼굴을 찾아내겠다는 구상이다. 이는 소수점 오른쪽의 미세한 수치에 집착하는 대신, 소수점 왼쪽의 거대한 경제 흐름을 포착하겠다는 그의 ‘빅 데이터’ 경영 철학을 대변한다.
하지만 그를 향한 정치권의 시선은 여전히 차갑고 복잡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명을 받은 만큼, 그가 연준의 독립성을 지켜낼 수 있을 것인지 의심하고 있다. 대통령의 입맛에 맞춰 금리를 팔아넘길 ‘정치적 대리인’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당파적 갈등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대통령의 꼭두각시가 될 것이냐”는 민주당 의원들의 공격에 그는 단호하게 “절대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대통령이 저금리를 선호하는 것은 당연한 정치적 생리일 뿐이며, 지명 과정에서 금리 인하를 담보로 한 어떠한 ‘이면 거래’도 없었음을 분명히 했다. 선출직 공직자의 발언권과 통화 당국의 결정권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선이 존재한다고 명확하게 선을 그었다.
워시 후보자가 미 의회의 인준을 받을 것인지 여부는 알 수 없다. 여당인 공화당의 톰 틸리스 의원이 연준 청사 개보수 수사 문제를 빌미로 인준안 처리를 보류하며 발목을 잡고 있다. 제롬 파월 의장의 임기 만료가 코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여야의 복잡한 셈법이 인준을 발목잡을 가능성도 있다.
워시는 직설적이다. 현 상황에 대해서도 워시는 정면돌파를 선언했다. “경제학은 물리학도 수학도 아니다”라며 실질적인 변화를 강조하는 그의 목소리는 새로운 경제 질서를 갈망하는 시장 참여자들에게 묘한 기대감을 심어주고 있다.
서른다섯의 최연소 이사에서 백전노장의 개혁가로 돌아온 케빈 워시. 그가 연준의 문턱을 넘어 ‘워시표 데이터 혁명’을 완수할 수 있을지 전 세계 금융시장이 숨을 죽이고 지켜보고 있다. 그가 꿈꾸는 연준은 단순히 금리를 결정하는 기구가 아니다. 인공지능(AI)과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경제의 동맥경화를 진단하고 처방하는 ‘디지털 경제의 파수꾼’이다. 워시의 귀환이 미국의 경제 정책을 넘어 글로벌 금융 질서에 어떤 지각변동을 일으킬지 전 세계가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
권순욱 기자 kwonsw8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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