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 구속영장 기각 뒤 검찰에 사건 송부
그러면서도 검찰의 보완수사 요구는 ‘거절’
검찰 직접 보완수사는 법원 기각에 막혀
결국 시효 다가오자 일부 혐의만 기소
‘수사권 문제’의 덫에 걸린 검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사이에서 13억원 상당의 뇌물을 받은 고위 공무원이 법적 처벌을 피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졌다.
해당 사건을 수사한 공수처는 검찰의 보완수사 요구를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거부했고, 검찰은 사건을 넘겨받고도 ‘보완 수사 권한’이 없어 더 이상 의혹을 더 파헤치지 못했다.
결론적으로 뇌물수수 정황을 파악해놓고도, 해당 혐의에 대해선 불기소처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형사5부(정재신 부장검사)는 감사원 고위 간부 김모씨를 뇌물 수수 및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김씨는 전기공사 업체를 차명으로 설립해 실질적으로 운영하면서 감사 대상 건설사들한테서 전기공사 하도급 대금 등 명목으로 15억8000여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를 받아왔다.
검찰은 김씨가 받아온 혐의 중에서 상대적으로 증거관계 등이 명확한 2018∼2021년 2억9000만원 상당의 뇌물 수수만을 기소했다. 감사 관련 편의 제공, 국책사업 입찰 심사위원 소개 대가 등으로 3회에 걸쳐 민간 업체들로부터 ‘뒷돈’을 받은 혐의다.
하지만, 검찰은 김씨의 나머지 12억9000만원 상당 뇌물 수수 혐의에 대해선 불기소 처분했다. 뇌물 수수 의심 정황은 분명한데도, 기소 처분을 내릴 만큼의 증거가 갖춰지진 못했다는 판단에서다.
이러한 상황이 벌어지게 된 이유는 수사권 조정 과정에서 발생한 ‘제도적 미비’ 때문이라는 게 검찰의 생각이다. 안동건 서울중앙지검 1차장검사는 “일반적으로 공여자 진술이나 객관적인 증거가 있어야 기소가 가능한데, 이러한 것들이 충분히 갖춰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사건의 경위는 이렇다. 감사원은 지난 2021년 10월 공수처에 수사를 요청했다. 그후 공수처가 2년여간 수사를 거쳐 2023년 11월 뇌물 등 혐의로 김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이 소명 부족을 이유로 기각했다.
그러자 공수처는 추가적인 보완 수사 없이 검찰에 공소 제기를 요청하면서 사건을 넘겼다.
사건을 검토한 검찰은 ‘보완 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 사건을 다시 공수처에 이송했다. 법원도 소명 부족을 지적했던 만큼, 공소 제기를 위해선 추가 증거 확보가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공수처는 “검찰의 사건 이송은 어떠한 법률적 근거도 없는 조치”라며 접수를 거부했고, 사건은 다시 검찰로 넘어왔다.
이에 검찰은 법원에 압수수색 및 통신 영장을 청구하는 등 직접 보완 수사에 나섰지만, 이번에는 법원이 ‘검사에게 공수처 사건의 추가 수사권을 부여하는 법령상 근거가 없다’는 등의 이유로 이마저 기각했다.
검찰이 보완 수사 요구도, 직접 보완 수사도 할 수 없는 어정쩡한 상황에서 일부 범행의 공소시효 만료가 가까워졌다. 수뢰 액수가 3000만원 아래인 일반 뇌물죄는 공소시효가 7년이다. 3000만원을 넘을 경우 특정범죄가중처벌법에 따라 공소시효가 10년, 1억원 이상이면 15년으로 늘어난다.
결국 검찰은 지난해 6월 공소 시효가 임박한 김씨의 일부 뇌물 수수 혐의를 1차로 기소했다.
이후 공수처는 지난해 9월 추가 수사에 필요한 기록 사본 등을 요청해 받아 갔지만, 지금까지 검찰에 추가로 자료를 보내지는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검찰은 결국 혐의가 충분히 입증된 일부 범행에 대해서만 기소하고, 나머지 사건은 불기소 처분하는 방식으로 사건을 종결했다.
안 차장검사는 “향후 제도 변화에 따라 이번과 같은 사례가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양수 기자(yspark@dt.co.kr)실시간 주요뉴스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